항목 ID | GC06300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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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ong of Removing the Young Rice Plants from the Seedbe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섭 |
채록 시기/일시 | 1985년 8월 15일 - 「모찌기 소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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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85년 8월 30일 - 「모찌기 소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이기준에게서 채록 |
채록 시기/일시 | 1985년 8월 30일 - 「모찌기 소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이정학에게서 채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10월 21일 - 「거창 일 소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 |
채록지 | 「모찌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560 |
채록지 | 「모찌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239-1 |
채록지 | 「모찌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27-22 |
성격 | 노동요 |
토리 | 메나리조에서 시작되어 평조로 바뀜 |
출현음 | 미솔라도레, 레미솔라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 전승되는 모 소리 중 모찌기를 할 때 부르는 노동요.
[개설]
「모찌기 소리」는 처음 시작할 때는 메나리조로 시작하여 모를 찌다가 모판이 얼마 남지 않을 때는 노동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리도 빨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5년 8월 30일 거창읍 상림리 560에서 이기준[여, 당시 73세], 1985년 8월 30일 거창읍 상림리 239-1에서 이정학[여, 당시 70세], 1985년 8월 15일 거창읍 대동리 27-22에서 오정달[여, 당시 39세] 등으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명의 가창자가 노래를 들려주었다.
[구성 및 형식]
정형은 4음보 격으로 4·4조의 기본 음수율, 3·3조의 변형 음수율을 이루고 있다.
[내용]
통상적으로 모찌기는 이른 새벽에 시작하여 날이 밝으면 끝내는 것이 상례다. 「모찌기 소리」는 모찌기를 빨리 끝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한강수와 같이 물이 많은 모판이나 백사장과 같이 바싹 마른 모판의 모를 찌기가 힘듦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꾼들이 조리 장수 딸이나 삿갓 장수 딸과 같이 모를 찌는 일을 아주 날렵하게 잘하고 있음을 칭찬하면서 일을 독려하고 있다.
「모찌기 소리」의 선창 종결 부분은 “~세”로 끝냄으로써 모찌기를 독려한다. 4단락에서는 첫 구절 종결 어미가 “~로다”로 끝나는데 그 구성은 모와 첩을 대조시키고 또한 잡나락과 기상첩을 대구로 구성함으로써 단조로운 노동을 하는 동안 소리로 흥을 돋우어 일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또한 농민들은 기상첩을 둘 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소리를 통해 기상첩을 둔 것과 같은 성취감을 느껴 보고, 잠시나마 노동의 고됨을 잊으려 한다. 여기에는 기상첩과의 성적인 관계로 다산을 바라는 민중들의 소박한 염원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모찌기 소리」는 “들어내세, 이기치세, 이어치세, 주리치세, 쌈을 싸세, 둘러싸세, 늦이네, 조이네” 등 다양한 형식이 전승되고 있다. 선후창과 교환창이 함께 전승되고 있는데 교환창은 「모내기 소리」 가락에 붙여 부른다. 노랫말 일부는 다음과 같다.
들어내세 들어내세 이 모자리 들어내세/ 나무가락 세가락 날랑가락 들어내세
한강수에 모를 부어 모찌기가 난감하네/ 이내 모판 얼른 찌고 임의 모판 빌려 찌세
벽사장에 모를 부어 모찌기가 낭감일세/ 석상에다 상추 갈아 상추 솎기 낭감하다
한 되 나락 모를 부어 잡나락이 반치로다/ 담 안 담 밖 첩이 드니 기상첩이 반치로다
쌈을 싸세 쌈을 싸세 요 모자리 쌈을 싸세/ 둘러싸세 둘러싸세 요 모자리 둘러싸세
주리치세 주리치세 요 모자리 주리치세/ 조리 장사 딸인가 주리치기도 잘한다
조리세 조리세 이모저모 조리세/ 삿갓 장사 딸인가 조리기도 잘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농업 문화의 발달로 농사일이 기계화됨에 따라 치마는 곧 여성을 상징했으며, 폭이 넓고 큰 치마가 다산과 풍요를 상징했던 전통은 오늘날 여성의 성 역할이 변하고 의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짐으로써 그 의미 또한 변하였다.
모찌기 작업도 종전의 논에 직접 파종하여 모찌기를 하던 작업이 모판에 볍씨를 뿌려 자란 모를 수거해 모심기를 함으로써 없어졌다. 그에 따라 모찌기 소리도 일 소리 중에서 1980년대 이후 거의 소멸되었다.
[현황]
노동요가 거의 소멸된 현실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1970년대부터 민요 조사를 하였다. 「거창 일 소리」가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됨으로써 그중 제4과장인 「모찌기 소리」는 무형문화재 거창 전수관을 통해 전수 및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모찌기 소리」의 사설을 통해 노동의 고됨과 어려움을 알게 해 주며, 힘든 노동 속에서도 삶의 희망과 환희를 노래한 민중들의 강한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