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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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거창 지역의 열부. 탐진최씨(耽津崔氏)[?~1380]는 공민왕 때 왜구의 노략으로 곤욕을 치를 때 붙잡혀 욕을 보게 되었으나 굳게 항거하여 순절한 열부이다. 나라에서는 절부의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절부리라 하였다. 탐진최씨는 낭장(郎將) 김순(金洵)의 아내이다. 탐진(耽津)은 전남 강진 일대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동음현이 경덕왕 때 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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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에서 정려를 받은 효열부. 분성 배씨(盆城裵氏)는 손가락의 피를 먹여 남편을 살리고, 7년간 시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 열부이자 효부이다. 효열부 배씨는 본관이 분성(盆城)[김해]이고, 남편은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후손인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준철(朴準喆)이다. 배씨 부인은 거창에 거주하던 박준철에게 시집을 온 후로 남편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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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거창 지역에 거주한 효녀. 효녀 이씨는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신각(慎恪)의 처이다. 효행으로 조정에서 신각의 처를 비롯하여 그 자매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거창 신씨 세보(居昌愼氏世譜)』에 의하면, 이씨의 남편은 신각이고, 아버지는 성산 이씨 이광선(李光先)이다. 효녀 이씨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찾기 힘들다. 다만 『거창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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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의 열부. 열녀 민씨(烈女 閔氏)는 본관이 여흥이며, 거창 신씨 신최명(愼最命)의 처이다. 남편이 호환을 당하여 물려 가자 호랑이를 물리치고 시신을 찾아와 장례를 치르고 결국 뒤를 따라 절명한 열부이다. 여흥 민씨(驪興 閔氏)는 경기도 여주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때 인물인 민칭도(閔稱道)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구례리 밑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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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왜적에 저항하여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한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열부.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신라의 전신인 사로(斯盧)의 6부 촌장 중 정씨(鄭氏)의 성을 하사받았던 취산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며 동래 정씨로 분파한 것은 정회문에서부터다. 거창의 동래 정씨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의 정씨가 가장 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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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의 열녀. 열녀 권씨는 이덕삼(李德三)의 아내로만 전하여 온다. 이덕삼(李德三)의 아내로 혼인하기 전부터 부모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했다. 집이 가난하여도 좋은 음식을 하루도 빠짐없이 올렸고, 병구완을 할 때는 그 효성에 감동하여 메추라기와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어 그것들을 잡아서 장만하여 드렸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연달아 세 손가락을 잘랐다. 이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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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의 열부. 분성 허씨(盆城許氏)는 충의위(忠義衛) 전주 이석권(李碩權)의 처로 남편이 병들자 온갖 정성으로 구완하였고 남편이 죽자 조카를 후사로 세우고 장례일에 남편을 따라 절명한 열녀이다. 분성은 경남 김해시의 옛 지명이다. 그러므로 김해 허씨라고도 한다. 김해 허씨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 허황옥을 시조로 하므로 김해 김씨와 같은 본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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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거창 지역에 거주했던 열녀. 열녀 이씨(烈女 李氏)는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 사는 이유은의 처였다. 이유은이 병으로 사망한 뒤 장례를 다 치르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열녀 이씨의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흥양 이씨 시조는 이언림(李彦林)이다. 열녀 이씨는 학문과 덕으로 유명하며 이조 판서와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문간공(文簡公) 창석(蒼石)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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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적의 핍박에 저항하다 순절한 절부 모녀. 정씨(鄭氏), 전씨(全氏) 모녀는 정선 전씨(旌善全氏) 전형(全珩)의 아내와 딸이다. 거창의 정선 전씨는 조선 초에 정선에서 정선 전씨 전맹겸이 거창으로 이주한 후 지속적으로 거창의 영승 마을에서 거주하였다. 한편, 초계 정씨는 합천 초계의 옛 이름이 팔계(八溪)이므로 팔계 정씨라고도 한다. 경상남도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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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거창 지역에서 거주한 열부. 완산 이씨(完山李氏)[?~?]는 첨지 정응진(鄭應進)의 처로 임진왜란 때 왜구에게 잡혀 핍박을 받자 목숨으로 응대하다가 절명한 열부이다. 완산 이씨(完山李氏)는 첨지(僉知) 정응진(鄭應進)의 아내이다. 완산 이씨는 고려 때에 전주 이씨를 부른 성씨로, 조선이 개국한 이후부터는 전주 이씨라 부른 경우가 대부분이...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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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김관영(金寬永)[1808~1868]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관일(寬一)이다. 아버지는 김광성(金光誠)이며 어머니는 경주 최씨다. 고려 말엽의 예의판서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이 122대조이다. 김충한은 고려의 운이 다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의리를 지키고 세상을 떠났다 . 아버지가 병이 나자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그러다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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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형제. 김기익(金基益)[?~?], 김기점(金基漸)[?~?] 형제는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 간 시묘를 하였으며, 눈이 안 보이는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한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김기익, 김기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기익, 김기점 형제는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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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거창 출신의 효자. 김석(金碩)은 어머니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다.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자, 김석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술에 섞어 먹이니 어머니가 다시 소생했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중종 때 정려를 내렸다. 중종 때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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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김응철(金應哲)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진사(進士) 김숙(金塾)의 아들이다. 선산 김씨 정조공파는 선산에서 터를 잡고 살다가 조선 세종 때 17세 김제남(金弟南)이 거창 현감으로 부임해 거창으로 이거하면서 거창 모곡, 의동, 사동, 학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김응철은 거창군 거창읍 사변리 사동 출신이다. 집이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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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김창락(金昌洛)[?~?]은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여 토끼와 꿩이 집으로 들어오는 신이한 일을 있게 한 효자이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번 포상하였다고 전한다. 김창락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호는 구계(龜溪)이다. 선산 김씨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통일 신라 때 인물인 김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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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효자. 충의위(忠義衛) 류강(柳橿)은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어머니를 성 밖으로 보내고, 아버지를 구하려다 왜인들에 의해 죽었다. 이에 효행을 기려 정려를 내렸다. 류강은 본관이 문화 류씨(文化柳氏)이며, 경상남도 거창 안음현 출신이다. 정유재란 당시 충의위(忠義衛)의 군병이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거창 지역을 포함한 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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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의 효자. 박기굉(朴基紘)[1802~1885]은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1886년 나라에서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밀양박공 기굉지려(孝子贈童蒙敎朝奉大夫密陽朴公基紘之閭)’의 정려를 받았다. 박기굉의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별좌공(別坐公) 박응현(朴應賢)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총관 박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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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반전(潘腆)[?~?]은 고려 우왕 때 아버지가 왜구에게 잡혀가자 죽음을 무릅쓰고 직접 왜구의 소굴로 들어가 아버지를 구해 온 효자이다. 반전은 안음현 사람으로 벼슬은 산원(散員)이었다. 『고려사』에는 ‘반전(潘腆)’이라고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에는 ‘심전(沈腆)’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우왕 14년(1388)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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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변준(卞浚)[?~?]은 거창 가조 출신의 선비로 부친을 봉양하는데 정성을 다하였고 장례와 시묘도 지극히 하여 고을 사람들이 감동하니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진 효자이다. 변준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좌승지(左承旨) 춘당(春堂) 변중량(卞仲良)의 8세손으로 5대조는 변효생(卞孝生)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변신보(卞申甫), 증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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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 효자와 그의 부인. 조선 시대에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 마을에 살았던 신성렬(愼性烈)[1759~1800]은 친어머니 모친상 후 3년 동안 채식하였으며, 계모와 친부를 지극히 섬겼다. 부인 강씨(姜氏)는 남편이 천연두로 죽은 뒤 아이와 시부모 때문에 죽지 못하다가 3년 뒤 남편의 뒤를 따랐다. 신성렬의 자는 백승(伯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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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효자. 자는 정보(精甫), 호는 황강(黃岡)이다. 거창 출신으로 1777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를 지냈다. 효행으로 1857년 정려를 받았다. 아버지는 신인명(認明), 할아버지는 취한당(就閒堂) 신수이(守彛)이다. 부인은 두 명이다. 첫 번째 부인은 증숙부인(贈淑夫人)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외조부는 파평(坡平) 윤씨 윤장언(尹長彦)이고,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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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신희민(愼希閔)[1584~?]은 거창 출신의 효자로 어머니를 모시는 정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으로 한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어 하니 물고기가 얼음 구멍을 뚫고 올라오는 신이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신희민의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거창 신씨 세보에 기록된 1584년 갑신(甲申)에 태어난 성여(聖與) 신희민(愼希閔)과 일치하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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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에 거주한 효자이자 충신. 이명돈(李命暾)[?~?]의 본관은 연안이며, 나라의 위기에는 창의하여 충을 세웠고 부모의 병환에는 정성을 다하여 효를 실천하여 정조 때 정려가 내려진 거창 지역의 효자이다. 이명돈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호는 동오(東塢)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죽재(竹齋) 이시익(李時益)의 현손(玄孫)이다. 연안 이씨는 병자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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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이우방(李遇芳)[?~?]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 출신으로 정희량의 난 때 거창 좌수인 아버지 이술원(李述原)[1679~1728]이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 병사를 일으켜 정희량을 죽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효자이다. 이우방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여함(李汝함), 증조할아버지는 김해도호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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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 효자이자 충신. 이휘(李暉)[?~?]는 거창 출신의 학자로, 아버지가 병이 들자 정성을 다해 간호였고 무신란 때 충절의 기개를 보인 효자이자 충신이다. 이휘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호는 반계(盤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경헌(景軒) 이순(李恂)이다. 이휘는 성리학에 몰두하여 학문이 정갈하고 바르며 격물(格物)에 밝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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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 효자와 열녀. 조선 후기 거창 안의현 출신 임한신(林翰臣)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임한신의 부인 고령 박씨(高靈朴氏)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들어 죽게 되면서 효자와 열녀로 정려되었다. 임한신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첨모당(贍慕堂) 임운(林芸)의 9대손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효자 임한신과 부인 박씨의 열행이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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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에서 활동한 효자. 정희돈(鄭希敦)[?~?]은 나이 드신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상례와 제례를 행하는 데 정성을 다하여 지방 유생이 건의하여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정희돈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거창 마리면에 거주하였다. 정희돈은 동래인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 거주하였다. 정희돈은 늘 어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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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최발(崔潑)[?~?]은 정유재란 때 여든 살이 넘은 아버지를 업고 피난하다 왜적을 만나자 곧은 절의로 왜적에 대항하다가 아버지를 안은 채 순절한 효자이다. 최발(崔潑)의 본관은 화순(和順)이며,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으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낸 문혜공(文惠公) 최선문(崔善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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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거창 출신의 효자. 최진대(崔鎭大)[?~?]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그 정성을 그치지 않고 죽으로만 연명하여 나라에서 동몽교관을 내린 효자이다. 최진대의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화순 최씨의 시조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 시대에 최세기가 전라도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군에 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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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효자. 허광(許匡)[?~?]은 아버지가 죽자 여막에서 3년 동안 시묘를 하는 등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허광의 본관은 하양(河陽)이며, 생원(生員) 허진효(許盡孝)의 아들이다. 허광은 이인 마을 출신이다. 1411년(태종 11)에 생원(生員)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에 이르렀다. 허광은 부모 생전에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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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효자 형제. 형률(邢溧)[?~?]·형결(邢潔)[?~?]은 거창 남상면 출신으로 조선 중종(中宗) 때 후릉 참봉을 지낸 형사명(邢士明)의 아들이다. 형은 아버지의 눈병을 고치기 위해 중국을 세 번이나 오가고 아우는 지극정성으로 약을 구하여 병을 고친 효자 형제이다. 형률·형결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아버지는 후릉 참봉(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