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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리[동읍]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204
한자 琴山里
영어음역 Geum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금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3.82㎢
총인구(남, 여) 308명(남 148, 여 160)
가구수 140가구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금산리는 ‘금산(琴山)’에서 연유하는 지명일 것이다. 금산의 ‘금(琴)’은 지모신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인 ‘금’과 ‘산(山)’을 뜻하는 ‘뫼’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생각된다. ‘금(琴)’의 자음이 ‘금’이고 ‘산(山)’의 훈이 ‘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산은 ‘지모신이 깃들어 있는 산’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금산이 정확히 어떤 산을 지칭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형성 및 변천]

금산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오는데, 당시 동면(東面) 이운(二運)에 속해 있었다. 금동리는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금동(金洞)이란 이름이 나오고, 과거에 급제한 김수광(金秀光)창원도호부 동쪽 금동인(金洞人)이라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금동리가 방리로 문헌에 처음 기록되는 것은『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이다. 금동리는 이 책에서는 금곡동(金谷洞)이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금곡(金谷)’은 ‘금동’의 또 다른 표기일 것이다.

1910년 마산부에 편입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동리(金洞里)를 병합하고 금산리라 하여 다시 창원군에 편입하였다. 1980년 4월 1일 의창군에 편입되었으며, 1991년 1월 1일 의창군창원군으로 개칭되고, 1995년 1월 1일 창원군이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창원시 동면 금산리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2일 동면이 동읍으로 승격되었다.

[자연환경]

서쪽에는 백월산(白月山)이 위치해 있고, 동쪽에는 주남저수지와 접하고 있다. 계곡과 저수지와 접하고 있는 지역에 소규모의 농경지가 개발되어 있다.

[현황]

동읍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2월 현재 면적은 3.82㎢이며, 총 140세대에 308명(남 148, 여 160)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0.49㎢로 밭이 0.16㎢, 논이 0.33㎢, 과수원 0.60㎢, 임야는 1.60㎢ 등으로 되어 있다. 동쪽은 벼농사 지대이고, 산기슭은 밭농사 지대이다. 문화 유적으로는 금산리 고분군, 금산리 고인돌, 금산리 토기요지 등이 있다.

마을 앞과 주남저수지 사이를 지방도 30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을 부근은 백월산의 동쪽 가장자리가 주남저수지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산자락을 따라서 건설되어 있는 지방도가 이 도로 중에서는 가장 굴곡이 심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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