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 읍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터. 『웅천 읍지』에 의하면 고산 봉수에는 봉수군보(烽燧軍保)는 100명[군 25인, 보 75인]이 있었다. 현동 뒷산인 고산(高山)의 정상에 있었으며, 동쪽의 사화랑산 봉수(沙火郎山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 창원 성황당 봉수(城隍堂烽燧)로 알렸다. 장복산 봉수가 폐지되기 전에는 동쪽 장복산 봉수, 남쪽의 창...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에 있는 사찰 유적. 『웅천 읍지』 불우조(佛宇條)에 “서광사는 지금 폐허가 되고 제영(題詠)만 굴암에 옮겨 걸었다.”라고 하여 굴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해 굴암지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굴암산 남동쪽에 계곡부에 위치한다. 진해 굴암지는 계곡부의 경사진 대지와 동굴(洞窟)로 이루어져 있다. 계곡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웅천 읍지』에 의하면 서광사지는 웅천현에서 북쪽으로 10리[약 4㎞] 지점인 웅산(熊山) 아래에 위치하며, 예부터 광석사(廣石寺)라고 불렸다고 되어 있다. 오래되고 낡아서 헐어내고 1826년(순조 26) 웅천 현감 김명혁(金命赫)이 다시 세워 서광사(西廣寺)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진해 서광사...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에 있는 여귀를 위로하는 제사터. 진해 여제단 터는 『웅천 읍지(熊川邑誌)』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1998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해 여제단의 존재가 밝혀졌다. 여제는 목적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무속의 지노귀굿·씻김굿·망묵굿이나 불교의 천도재 등과 유사한 사령제 또는 위령제이다. 여제...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성산구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경계부에 솟아 있는 봉우리. 웅암은 웅산[660m]의 남쪽 지맥 정산에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 이르는 대표적인 등산로는 진해구 자은동 코스, 안민 고개 코스, 천자봉 코스 등 크게 3개 루트가 있으며, 그 외에 지맥과 연결되는 많은 등산로가 있다. 웅암의 정상부에 오르면 진해구 중심지·웅동·웅천 지역을 비롯...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산32-1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교육 기관 터. 향교는 중등정도의 지방관학으로 지방의 양반 자제 교육 및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에 대한 향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지방 문화의 향상 및 사풍 진작 등 사회 교육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적극적인 진흥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부·목·군·현에 향교가 설치되고...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569-6, 572-2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교육 기관 터. 향교는 지방의 양반 자제 교육 및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에 대한 향사를 목적으로 설립한 지방의 중등 관학 기관이며 아울러 지방 문화의 향상 및 사풍 진작 등 사회 교육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 적극적인 향교 진흥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부·목·군·현...
-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서 주로 정치 군사적인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운용된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지방과 변경의 긴급한 상황을 국왕에게 신속히 전달하기 위하여 마련한 통신 제도이며, 주로 정치 군사적인 목적에서 설치, 운영되었다. 기록상 봉수제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인데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봉수로는 고산 봉수(高山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경상도 방면에서 서울 목멱산[남산]에 이르는 조선 시대 봉수 체제에서 제 2거의 간봉(間烽)으로 동쪽의 가덕도 천성 연대 봉수(天城烟臺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서쪽 창원 여음포 봉수(餘音浦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로 연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894년(고종 31) 팔로(八路)의 봉수가 폐지될 때...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과 남문동과 서중동에 걸쳐 있는 조선 시대 웅천현(熊川縣)의 읍성 터. 진해 웅천 읍성 설치의 주요한 이유는 읍성 남쪽 제포 왜관에 상주하는 항거왜인(恒居倭人)의 세력이 급증하자 이들의 준동(蠢動)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434년(세종 16)에 건립에 착수하여 1435년(세종 17)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1452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