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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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식민지 교육 환경을 개혁하려는 민족교육운동 함안의 군북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김두영은 식민지 통치하의 교육환경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의 교육현실에 대해 “취학아동이 취학연령 아동의 불과 2할이고, 그나마 빈곤으로 퇴학하는 아동이 속출했으며, 혹 야학같은 것을 설치하고 교육하면 당국은 특별한 이유없이 폐쇄를 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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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교원 단체가 민족 교육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교원 노조 운동. 일제의 식민 통치 기본적 입장은 일선 동조론과 동조동근을 앞세운 동화주의 통치였다. 일제는 원활한 통치를 위해 일제 강점기 내내 동화주의 통치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원활한 실행을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식민 교육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민족정신과 민족 문화의 말살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인화 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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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신촌동과 내리동 경계에 있는 하구. 봉암하구라는 명칭은 하구가 위치한 지역이 봉암리라고 불리었던 것에서 유래된다. 문헌 기록상 봉암리(鳳巖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나온다. 봉암하구는 신촌동 뒷산과 내리동의 팔룡산 사이에 형성된 하구로, 창원시의 주요 하천인 남천·창원천·내동천·양곡천이 봉암하구로 유입되어 마산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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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속하는 행정동. ‘봉암’이라는 지명은 동 뒤에 있는 산 봉우리 모양이 봉(鳳)과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봉암동은 본래 합포현 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 창원군에 편입되었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합에 의해 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리라 칭하고 창원군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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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암’은 봉황처럼 생긴 봉바우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봉바우 또는 봉암이라 불리어 지다가 봉암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은 동쪽을 뜻하고 ‘암’은 바위를 뜻하므로 봉암리는 ‘바위 동쪽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볼 수 있다. 봉암리가 적석산과 깃대봉의 동쪽 부근에 위치하므로 이들 산지의 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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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부내면(府內面) 산하에는 모두 2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부내면 일운은 부내면 소속의 2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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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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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행정 구역. 진전면은 여양리, 고사리, 평암리, 금암리, 창포리, 곡안리, 근곡리, 동산리, 봉곡리, 봉암리, 이명리, 율티리, 오서리, 시락리, 양촌리, 일암리, 임곡리의 1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진전’이라는 지명은 1914년에 진해부의 서면에 위치한 진서면(鎭西面)과 양전면(良田面)이 통합되면서 생겨난 지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