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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 노동자 대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78
한자 七八月勞動者大鬪爭
영어의미역 July, October Conflict of Labor in 1987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87년 7월 5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87년 8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울산|경상남도 마산|경상남도 창원
관련인물/단체 현대엔진|동명중공업|현대정공|한국중공업|대우조선 등

[정의]

1987년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

[개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1987년 7월 5일 현대엔진 노동조합 결성을 시작으로 7~9월에 걸쳐 임금인상과 민주노동조합 건설을 주요 요구로 하여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터져 나온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대중화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 현장의 경우 여전히 비민주적인 행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경제는 1986년부터 시작된 3저 호황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2~13%에 이르고 무역수지도 1986년 46억 달러, 1987년 99억 달러, 1988년 14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986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1980년 실질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1986년 실질임금은 72%에 불과했다. 여기에 장시간 노동,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작업환경, 산업재해 빈발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은 고조 되었다.

[발단]

1987년 7월 5일 현대엔진에서의 노동조합 결성이 신호탄이었다. 현대엔진에서 지펴진 노동자 대투쟁의 불꽃은 삽시간에 울산 전역을 휩쓸었다. 7월 15일 현대미포조선, 7월 21일 현대중공업, 7월 24일 현대자동차에서 각각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설립신고 문제를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회사가 충돌하였다.

[경과]

노동자 대투쟁의 불길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마산·창원 지역에서는 7월 21일 동명중공업노조가 설립되었으며, 7월 31일에는 현대정공노조가 설립되었다. 세신실업은 8월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고, 대우중공업, 한국중공업, 통일, 기아기공 등 대공장 노동자들이 줄줄이 투쟁에 합류하였다.

투쟁은 곧이어 마산수출자유지역으로 전파되어 8월 한 달 동안 총 75개 입주업체 중 41개 업체에서 쟁의가 발생하였다. 당시 마산·창원 지역 전체 노동자 15만여 명 중 8만여 명이 투쟁에 참가했으며, 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8월 10일 전후에는 창원공단 전체 중 2/3 이상이 조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8월에 들어서는 거제의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되었고, 8월 중순경에는 경인 지역으로까지 북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속사업장에서 시작된 대투쟁은 제조업, 서비스 산업, 공공부문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하여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모두 3,341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노동자 대투쟁은 8월 28일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전두환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에 직면하였다. 정부는 ‘좌경용공세력 척결을 위한 담화문’ 발표와 함께 9월 4일 대우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파업농성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키고 노동자들을 대거 구속하였다. 이때부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대투쟁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결과]

이 투쟁의 결실로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조합들의 결성과 민주화가 대거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임금인상과 더불어 근로조건도 대폭 개선되었다. 마산·창원 지역의 경우 1987년 한 해 동안 임금이 18~28% 인상되었다. 전국적으로 1987년 말까지 1,361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졌다. 마산·창원 지역에도 노동자 대투쟁 기간에 40여 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졌으며, 20여 개의 노동조합이 민주화되었다. 이때 결성되거나 민주화된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1987년 12월 전국 최초의 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의 창립이 이루어지게 된다.

[의의와 평가]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체계적인 계획이나 전략, 조직적인 통솔 없이 수천 건의 노동쟁의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노동자들은 ‘선투쟁 후협상’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고, 투쟁을 통해 악법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이라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시키고 대중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은 공장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지역별 및 업종별 연대를 거치면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지향했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운동의 중심세력도 1970년대 여성노동자 중심에서 대공장의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변화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의식도 크게 향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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