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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590
한자 陶窯址
영어의미역 Kiln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집필자 김형곤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 터.

[개설]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낸 생산 유구의 하나로, 가마 터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식생활 용기로서 토기나 도자기류를 즐겨 사용한 관계로 그것들을 구워내는 기술이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토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저장 용기로 제작 사용되었다. 일부 목기를 활용한 경우도 있었고 기원전후 시기에는 목기 외면에 옻칠한 소위 칠기 용기가 상층부 인사들이 사용한 경우가 있다.

[변천]

선사 시대 토기 제작은 규격화된 가마의 존재는 없고 다만 지형을 이용하여 맨땅 위에 토기를 쌓고,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이 있었다. 삼한 시대를 거쳐 삼국 시대에는 중국의 도기 제작의 영향을 받아 1,200° 이상의 고온으로 정질의 토기 생산이 가능한 가마를 이용하여 토기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고온을 내는 가마의 존재는 기술사적인 면에서 BC 3세기부터 시작된 철광석을 제련, 가공할 수 있는 철기 제작이 가능했던 당시의 사회 발전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신라 토기는 소성도(燒成度)가 매우 높고, 정선된 태토를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기면에 넘쳐나는 자연 유약 흔적은 양질의 도기에 해당한다.

고려 시대에는 유명한 고려청자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산내면 등의 가마에서 양질의 청자가 생산되어 바닷길을 이용하여 수도 개성으로 공급하였다.

조선 시대는 친근미가 있는 백자로 변화하여 인화분청(印花粉靑)·감화분청(嵌花粉靑)·백토분청(白土粉靑)·철화분청(鐵火粉靑) 등 다양한 무늬의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도요지는 경기도 광주(廣州)의 관요(官窯)를 비롯하여 대전, 전라남도 무안(務安)·장흥(長興), 경상남도 진주·합천 삼가·언양(彦陽)·양산·김해 등의 요지가 있었다.

전통적인 도요지는 본체부 경사도(傾斜度)에 따라 평요(平窯)와 등요(登窯)가 있고, 다시 등요는 아궁이 이외의 전체가 터널 모양으로 된 지하식(地下式)과 반지하식(半地下式), 지상요(地上窯) 등으로 구분된다. 또 가마굿의 숫자로 분류하면 굿이 하나로 된 단실요(單室窯)와 둘 이상이 이어지는 연방요(連房窯)가 있다.

[현황]

창원 다호리 고분군, 가음정 유적, 도계동 고분군, 삼동동 고분군 등 가야·삼국 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고배, 기대, 항아리류들의 정질 토기류를 감안하면 주변 일대에 토기 제작처인 가마가 발견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재까지 창원에 남아 있는 삼국 시대 도요지는 창원 중동 유적이 있고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동읍 금산리 가마터가 있고 조선 시대에는 진해구 두동 도요지가 유명하다. 이외 상천리를 비롯한 신촌리, 내곡리, 본포리, 봉곡리, 천선동, 단계리, 무점리, 마산 쪽의 곡안리·송도 도요지는 조선 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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