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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29
한자 鳳林寺址
영어의미역 Bongnimsaji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165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절 터
지정면적 약 6,978㎡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165 등 5필지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27호
문화재 지정일 1993년 12월 27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절 터.

[변천]

봉림사는 폐사된 절 터에 중창의 형태로 창건되었다. 이전 사원의 규모나 사명(寺名)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창건의 시점은 907~911년(신라 효공왕 11~15)이었다. 창건의 주역은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였고, 여기에는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 김인광(金仁匡), 김율희(金律熙) 등 주변의 재지 유력가들이 후원하였다. 심희가 입적하던 923년(경명왕 7) 그의 법을 전해 받은 제자의 수가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며, 당시 봉림산문(鳳林山門)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후 고려 중기 혜목산(慧目山) 고달사(高達寺)가 부상하면서 산문의 중심이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을 통해 출토된 기와편에 ‘봉림산(鳳林山) 보제사(普濟寺)’라는 명문와(銘文瓦)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일시적으로 보제사라는 사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위치]

봉림동 봉림산의 북서쪽 계곡부 끝에 자리하고 있다. 원 봉림마을에서 북동쪽 계곡을 따라 600m 가량을 올라가면 물길이 둘로 나뉘는데, 절 터는 그 사이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위치한다. 입구 쪽이 좁고 안으로 들어가면 점차 넓어지는 모양이 마치 주머니를 연상하게 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5~1998년 사이 4차례에 걸쳐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조사는 제일 동쪽의 높고 평탄한 부분을 중심으로 실시하였는데 금당지(추정), 탑지, 배수로 등을 확인하였다. 2차 조사에서는 사역의 동북 부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중첩된 건물지와 배수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3차 조사에서는 수미산(須彌山)과 그 일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배수시설, 건물지, 인공으로 축조한 연못 등을 확인하였다. 마지막 4차 조사에서는 사역의 남동 부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배수시설, 건물지 등을 확인하였다. 이들 조사를 통해 일부 건물지와 탑지(塔址)가 확인되었으며, ‘봉림사(鳳林寺)’ 명문(銘文)의 와편 등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현황]

현재의 봉림사지는 물이 풍부한 곳으로 상당 부분이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사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동서로 약 180m, 남북으로는 약 30~120m이다. 사역의 중심지에 수미산(須彌山)으로 여겨지는 조산(造山)이 있다. 봉림사지는 약 6,978㎡가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봉림사지는 신라 하대 불교 사원의 구조와 고승의 수행도량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하지만 원 터에 있던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寶月凌空塔)[보물 제362호]과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寶月凌空塔碑)[보물 제363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고, 봉림사지 삼층석탑(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은 상북초등학교에 안치되어 있는 등 절 터에서 멀리 벗어나 제각각 흩어져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