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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윤 유품 쌍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136
한자 金命胤遺品雙劍
영어의미역 Keepsake two swords from Gim Myeongyu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43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쌍검
제작시기/일시 17세기
제작지역 서울
재질 철제품
길이 73cm|62cm
너비 5.2cm
소장처 도봉서원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 432-1 지도보기
소유자 상산김씨 종중
관리자 상산김씨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3호
문화재 지정일 1997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 출신인 김명윤의 유품인 검 2점.

[개설]

김명윤(金命胤)[1564~1609]은 부사를 역임한 한(漢)의 아들로 김해 답곡리에서 출생하여 창원의 동쪽 도산리(道山里)[현재의 석산마을]로 이주하여 살았다. 1583년 19세로 과거에 급제하고, 파주·충주·진주·홍주·제주 등지에서 목사로 재임하였다.

그는 1592년(선조 25) 파주목사로 재임 중 임진왜란을 맞았는데, 요로에 군사를 매복하여 방어에 힘을 쏟아 잡힌 포로가 많았으므로 왜적이 감히 경계를 넘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활과 쌍검을 내려주었는데 이 검은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1605년(선조 38) 왕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전공을 포상하였는데, 이때 김명윤은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고, 특명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 공신녹권은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다.

제주목사를 끝으로 벼슬살이를 마친 김명윤은 향리로 내려와 동산정(東山亭)을 짓고 여생을 보내었다. 1609년 함경도 남병사에 제수되었으나 임지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그의 나이 45세였다. 자는 경찬(景纘), 호는 동산(東山)이다.

[형태]

검은 모두 2점인데, 칼[刀]과 같은 모양이나 양쪽에 날이 서있고, 등 쪽에는 가지가 붙었다. 나무를 꽂았던 손잡이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길이가 73㎝, 폭이 5.2㎝이다. 다른 한 점도 비슷한 형태이며 길이는 약간 작은 62㎝ 가량이다. 그동안 김명윤을 배향한 도봉서원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최근 국립진주박물관에 보존·관리를 위탁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창원시 문화재자료 제2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