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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귀화한 팽도독의 무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183
한자 朝鮮-歸化-彭都督-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8년 - 「조선에 귀화한 팽도독의 무덤」 『진해 스토리』에 수록
관련 지명 고절산 - 창원시 진해구 소재
성격 역사 전설
주요 등장 인물 팽우덕|팽신고
모티프 유형 귀화(歸化)|시조(始祖)담|사실담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팽도독 무덤에 관한 역사담.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속천동해군 사관 학교 사이로 뻗은 이 산은 속칭 관출산, 고출산, 곶출산이라 하고 있으나 바른 이름은 고절산이다. 이 산에는 팽도독 부자의 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 가운데 육군 대도독으로 팽우덕 장군과 그의 아들 신고가 있었다.

팽도독은 1593년 1월에 평양 탈환전에 이어 이여송과 같이 참전하였고 그의 아들은 4월에 왕명으로 하사받은 쌀 10만 석을 군량미로 보급하기도 하였다. 159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항복서를 위작한 이른바 ‘간빠꾸항서’를 가지고 명나라와 강화 교섭이 진행될 때는 일시 귀국하기도 했다. 정유년에 왜군이 재침을 하자 팽도독은 지원군 6천 2백 명을 거느리고 다시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아들 신고도 ‘어사중승격참장’으로 전공을 세운 바 있었다.

전란 후에는 귀국을 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였으며 아들은 부친의 뜻에 따라 동래 정씨 문중에 장가들어 부산에 영주하여 절강 팽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후에 이 부자를 부산의 만덕산에 안장하였던 것을 정조 21년 2월에 충훈부에서 팽도독의 전공을 높이 찬양하여 안곡동의 임야를 하사하여 팽도독 부자의 무덤을 이장하게 하고 산 이름을 고절산이라고 내렸던 것이다.

[모티프 분석]

「조선에 귀화한 팽도독의 무덤」은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출전한 팽우덕 장군 부자의 귀화담과 절강 팽씨 ‘시조담’이 주요 모티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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