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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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物産 奬勵 運動 |
영어공식명칭 | Home Product Promotion Campaig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1923년에 전개된 경제적 자립 운동.
[개설]
1923년 전국적으로 경제적 자립 운동인 물산 장려 운동이 전개되자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도 1923년 3월 3일(음 1월 16일) 주초 단맹회(酒草斷盟會)를 결성하여 술과 담배에 쓰이는 돈을 저축하여 공익에 쓰기로 하였다.
[역사적 배경]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일본은 공황에 빠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제는 조선을 식량 원료 공급지뿐 아니라 자본과 상품 수출 시장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회사령을 철폐하고 관세 또한 철폐하면서 조선인 토착 자본은 일본의 자본과 일본산 제품의 공세에 열세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토산품 애용’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구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게다가 1920년대 문화 운동이 전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이 주장되어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하는 물산 장려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물산 장려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1920년 8월 평양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기되었고, 서울의 조선 청년회 연합회에서 이 운동에 호응해 1922년 말부터 활발히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20일 서울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 발기 총회가 진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청년회가 주도적으로 조선 토산품 장려와 자작 자급 등의 구호를 내세우고 조선 물산의 소비를 선전하였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는 금주·금연·저축을 구호로 한 소비 절약 운동이 일어났고, 각종 단체가 만들어져 물산 장려 운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도 소비 절약 운동에 동참하여 신원면에서 주초 단맹회가 결성되었다.
[경과]
1923년 3월 3일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의 윤건효(尹建孝), 도진기(都鎭基), 신종학(愼宗學), 김순주(金洵柱), 김상묵(金湘默) 등 유지들의 발기로 주초 단맹회가 결성되었다. 당시 임원진을 보면 이사 윤건효·도진기·신종학·김순주·김상묵, 감사 신철균(申喆均)·박채규(朴埰奎)·장정섭(章正燮)·이상의(李尙懿)·박기주(朴基周), 평의원 문정수(文正秀) 등이었다. 회원 중 음주나 흡연하는 자가 있으면 술은 1원, 담배는 50전의 벌금을 걷었다. 또한 담뱃대와 누룩을 수거하여 담뱃대는 주초 단맹회에서 보관하고, 연초와 누룩은 시가로 팔아 주인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술과 담배에 쓰이는 돈을 월례금으로 매월 10전씩 거두어 저축하고 공익에 쓰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