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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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645m 봉우리[창원시 성산구 천선동과 진해구 소사동 경계의 웅산 남쪽 봉우리]에서 발원하여 남문동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 웅산(熊山) 줄기에서 발원하므로 원래 곰내[熊川] 또는 웅천(熊川)이라 불렀으나 과거 ‘웅천현 관아가 있던 진해구 성내동 동쪽을 흐른다’고 하여 동천(東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웅천’이라는 명칭은 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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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전통 시대의 방어 시설. 우리나라의 성곽은 축성 재질로 보아 토성·석성·토석 혼축성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입지에 따라 평지성·산성·평지를 포함한 산지성으로 나누어진다. 성곽은 그 용도와 기능면에서 볼 때 단순히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새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지방 행정 통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성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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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성내동은 웅천현 읍성 안에 취락이 이루어져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사대문 안 인 읍성 내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방 양반인 지방 관리들이어서 읍살이를 한다고 하였고, 성 밖에 사는 사람을 외살이를 한다고 하였다. 성내동은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 웅신현(熊神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골포현이 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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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군대가 현재의 창원[진해구]에 일본식 축성 기술로 쌓은 성곽군. 왜성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이 조선에 건립한 성곽으로 현재의 창원[진해]에는 웅천 왜성, 명동 왜성, 안골 왜성 등이 있다. 이 왜성들은 임진왜란 강화 기간 내내 웅천[현 진해]에 축조되어 일본군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현재 유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왜성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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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일본식 건물. 웅천 방앗간은 웅천 읍성 내에 위치한 재래시장 입구에 있는 2층 일본식 건물이다. 상량문을 보면 ‘소화 18년 10월 1일 계미 구월 초 3일 임진 신시 입주 상량(昭和十八年十月一日癸未九月初三日壬辰申時立柱上樑)’이라 묵서되어 있어 1943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웅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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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행정동. 웅천동의 옛 이름은 곰내로 곰(熊)은 짐승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검(儉)[君], 곰[神]등의 뜻을 가진 옛말을 소리대로 표기한 것이다. 웅천은 존장(尊長)이 있는 곳을 표시하고 그 마을이 시냇가에 있음을 표시한 것이며, 옛날 곰이 많이 살고 있어 곰들이 내려와 냇물을 먹고 가는 곳이라 하여 웅계(熊溪)라 하였다가 웅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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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웅천(熊川)에 설치되었던 군사 주둔 지역인 진(鎭). 진(鎭)은 변경 방어상의 요충지이며 군사가 주둔하는 지역이다. 조선왕조가 개창된 이후에도 전국의 군사적인 방어체계를 재편하였다. 이 과정에서 세조 때 진관체제(鎭管體制)가 등장하였다. 웅천진(熊川鎭)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군사 관계를 보면 진해(鎭海)와 함께 웅천(熊川)은 김해진관(金海鎭管) 소속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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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웅천현(熊川縣)은 1452년(문종 2)에 웅신(熊神)·완포(莞浦)의 두 현과 천읍부곡(川邑部曲)을 통합하여 웅천현(熊川縣)으로 승격하면서 설치되었다. 웅천현에는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수군 진(鎭)이 있었던 관계로 무관이 배치되었다. 웅천현을 보호하는 성(城)으로는 진해 성내동, 남문동, 서중동 일대에 소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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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동에 있는 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충무동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태평동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부엉등’ 혹은 ‘부엉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황산 봉우리에 진해탑과 제황산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상에 올라서면 진해 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제황산의 원래 지명은 ‘부엉등’ 또는 ‘부엉산’이었다. 산세가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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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서중동에 있는 국토의 신과 오곡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의 터. 사직(社稷)은 사와 직의 합성어로, 직은 고대 이래로 재배되던 오곡 중에서 그 대표자로 인식되어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태종 실록』에 따르면 1406년(태종 6) 6월 예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성 유후사 이하 각도 각 고을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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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산32-1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교육 기관 터. 향교는 중등정도의 지방관학으로 지방의 양반 자제 교육 및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에 대한 향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지방 문화의 향상 및 사풍 진작 등 사회 교육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적극적인 진흥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부·목·군·현에 향교가 설치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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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왜인들과의 무역처. 왜관은 조선 시대 왜인들의 교역과 숙박을 위한 시설을 갖춘 무역처이다. 조선 왕조는 고려의 멸망이 왜구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왕조 개창 초기부터 화전양면책(和戰兩面策)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수군을 증강하여 해상에서 강력한 토벌 작전을 수행하는 한편, 왜인들에게 교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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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청안동 청천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수군 별장진터. 『웅천현 읍지(熊川縣邑誌)』에 의하면, 청천진(晴川陣)은 웅천현[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의 옛 고을 이름] 동쪽 20리 지점에 있으며, 별장(別將)이 거느리는 전선[판옥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伺候船) 2척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청천진의 ‘진’은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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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일본군이 축조한 성. 경상남도 남부 연안 지대에 왜성이 축조되기 시작한 것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3년(선조 26)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은 1592년 5월 이후 부산포 서쪽 해상에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에 의해 참패를 맛보았고, 그 결과 일본군은 “수군 원호”와 “보급기지 확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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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과 남문동과 서중동에 걸쳐 있는 조선 시대 웅천현(熊川縣)의 읍성 터. 진해 웅천 읍성 설치의 주요한 이유는 읍성 남쪽 제포 왜관에 상주하는 항거왜인(恒居倭人)의 세력이 급증하자 이들의 준동(蠢動)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434년(세종 16)에 건립에 착수하여 1435년(세종 17)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1452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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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진해 제포진성의 축성과 관련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몇몇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제포진성(薺浦鎭城)이 아니라 제포성(薺浦城)이라 지칭하고 있으며 제덕토성과 혼동되기도 하는 등 기록이 명확하지 않고 논의 또한 복잡하다. 진해 제포진성이 처음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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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은 고대로부터 창원·김해 지역과 해외를 연결하는 접촉 통로 역할을 하였다. 가락국 허황후가 탔던 배가 진해구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처음으로 침략해왔던 지역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진해구 해안에 수군 관방과 왜관이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