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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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 용지공원 내에 있는 통일 교육장. 경상남도 통일관은 통일에 대비하여 경상남도민에게 북한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비교·체험케 함으로써 통일 의지를 고취시키는 등 통일안보 체험현장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980년 11월 21일 경상남도 반공회관으로 건립되었다. 설계는 건축가 고 김수근이 맡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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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과 북면 지개리를 연결하는 고개. 검산(檢山)[293m]과 천주산(天柱山)[638.8m] 사이의 안부에 개설된 고개이다. 풍수사상에 입각한 비보책에 따라 인공적인 굴착으로 만들어진 고개로서, 이러한 사실은 판고개[掘峴]라는 지명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고개는 낙동강 변의 주물연진(主勿淵津)까지 통하는 교통로로서 낙동강으로 통하는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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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김복일(金復一)은 1586년 10월부터 1587년 6월까지 창원부사로 재직하며 창원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쳤다. 김복일이 창원부사로 있을 때 김복일이 밝고 청렴한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린 덕을 기려 부사김공청직유애비(府使金公淸直遺愛碑)를 세웠다. 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 용지공원에 있는 이 비는 비개(碑蓋)와 비신(碑身)을 한 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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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대도호부도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숙일(叔一). 아버지는 김여련(金汝鍊)이고, 어머니는 여홍호의 딸이다. 김영범은 1804년(순조 4)에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도사로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김영범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921년 8월 경상남도 창원시 웅남면 덕정리에 정삼품통정대부전도사김영범시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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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은 한국의 대표 동요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우물처럼 깊게 배인 이 동요를 한국인의 가슴에 새겨준 사람은 동원 이원수이다. 이원수는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열 달 만에 창원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마산으로 이사하여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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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민원중은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10년(숙종 36) 3월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12년 7월에 교체되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1718년(숙종 44) 경상좌수사로 있었다. 1712년(숙종 38) 6월 민원중의 선정을 기리는 부사민원중청덕선정비(府使閔遠重淸德善政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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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박명훈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13년(순조 13) 6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에 교체되었다. 1814년에 창원부사로 재임 중 박명훈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박후명훈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朴侯明勳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 부임하여 자리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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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 박수진은 어진 인품으로 창원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쳤다. 1909년(순종 3) 윤2월 8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정동 주민들에 의해 박수진의 공덕을 기리는 전감찰박수진혜민불망비(前監察朴叟鎭惠民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날 우리 동정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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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박홍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처음 이름은 박경립(朴敬立)이다. 박홍미는 15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병조좌랑, 1614년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 후 정언·지평·수찬·교리·헌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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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백선남은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636년(인조 14) 2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11월 인조를 구하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쌍령(雙嶺)에서 진을 치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637년 10월 백선남이 창원부사로 있으면서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수행한 것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백후선남청정비(大都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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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 창원대로 창원병원사거리에서 창원대학교를 연결하는 보조 간선도로. 용지로가 속한 용지동은 옛 용지리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용지리는 용지[현 용지호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현재 북15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구간 길이 약 3.4㎞, 폭 25m(대로3류)의 왕복 4~5차선 도로이다. 북15로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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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창원시 불모산동은 과거에 미륵동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고려시대 양식의 석불입상과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석탑 부재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뜻있는 사람들이 불모산동 사지에 자리하였던 탑재를 옮겨와 복원, 건립하였다. 원 탑재는 불모산동 산199번지 소재의 불모산동 사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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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불모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 터. 불모산동 폐사지(1)는 불모산동 고분군과 일부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유적으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이 일대 미륵동에 고려시대 석불좌상과 통일신라시대 폐탑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모산동 폐사지(1)은 창원시 불모산동 한국전기연구원 배후의 구릉과 사면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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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서영보의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경재(景在), 호는 죽석(竹石).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의 고손이며,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서지수(徐志修), 아버지는 대제학 서유신(徐有臣)이다. 아들 서기순(徐箕淳)도 뒤에 대제학에 올라 아버지로부터 부자손 3대가 대제학을 지내는 가통을 세웠다. 서영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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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1990년 신월동을 법정동으로 설치하면서 신월동 지역의 옛 이름인 신덕리(新德里)의 ‘신(新)’자와 토월리(吐月里)의 ‘월(月)’자를 따서 명명하였다. 신월동의 명칭은 신덕리(新德里)의 ‘신(新)’자와 토월리(吐月里)의 ‘월(月)’자를 따서 명명하였으므로, 두 마을의 형성 및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덕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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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양선수는 1849(헌종 15) 10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52년(철종 3) 5월에 교체되었다. 원래는 2년 임기였으나 백성을 잘 다스려 임기 1년을 더하였다. 1857년 3월 양선수의 공덕을 기리는 행대도호부사양후선수휼민영세불망비(行大都護府使梁侯宣洙恤民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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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에 있는 비석군. 용지공원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은 불망비(不忘碑)가 주종을 이루며, 그 외 몇 기의 신도비와 송덕비가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 창원대도호부의 부사와 관찰사 등이 재임 동안에 베푼 선정과 애민정신을 잊지 않고 후대에 널리 알려 표상(表象)으로 삼고자 세운 것들이다. 용지공원 비석군은 1975년 이후 창원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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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용지동은 옛 용지리(龍池里)의 이름에서 옮겨 왔는데, 용지(龍池)[현 용지호수]는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용지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용지동은 조선시대 말기 상남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대리(斗大里) 일부를 통합하였다. 1973년 7월 1일 마산시 남부출장소 용지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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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에 있던 저수지.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물을 가두기 위해 쌓은 제언이다. 이 제언은 둘레가 1,744자이고 수심이 5자였다고 한다. 용지제는 광복 이후까지 한동안 농업용수의 본래적 기능을 일정하게 담당하고 있었으나 창원의 개발과정에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특히 1974년 용지제가 위치한 용지동 등이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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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용호동(龍湖洞)은 용지동이 분동된 것으로, 과거부터 있었던 마을 이름인 용지동(龍池洞)을 달리 지칭하여 용호동으로 명명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용호(龍湖)나 용지(龍池)는 결국 같은 뜻의 한자말이기 때문이다. 용지동은 용이 못에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용호동은 용지동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형성 및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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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윤우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3년(선조 6) 안악군수에 이어 함흥판관이 되었다. 1581년(선조 14) 창원부사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이 후 영위사(迎慰使), 안주목사, 나주목사를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지중추부사로 급고사(急告使)가 되었으며, 같은 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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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이용익은 1871년(고종 8) 평해군수로 나아갔다. 1876년 8월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가 1878년 2월 전라좌수사로 옮겨간 후 이듬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1881년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90년 병조참판을 거쳐 1892년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1897년(광무 1) 정2품으로 있으면서 중추원1등의관이 되었다.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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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이희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730년(영조 6) 10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33년 2월 공주영장(공주에 설치되었던 충청우영의 수장)으로 옮겨갔다. 1743년 황해병사가 되었다. 1735년(영조 11) 이희하를 기리는 대도호부사이공희하애민선정비(大都護府使李公希夏愛民善政碑)가 세워져 현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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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외동에서 사림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중앙로는 창원시의 실질적인 중심 지구를 통과하는 도로이다. 창원시청과 그 앞의 광장을 중심으로 경상남도의 행정 중심인 사림동의 경상남도청과 창원공단 관리의 중추인 외동 동남공단관리사무소를 잇는다. 중앙로의 양쪽에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창원시의 중심에 개설된 도로라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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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매년 가을에 단풍을 주제로 열리는 축제. 성산아트홀 주변은 용지공원을 비롯하여 용지호수와 야외조각공원, KBS 창원홀 등 문화예술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문화적 로맨티시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시설과 환경을 활용하여 기업 사랑의 도시, 생태 환경의 도시,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를 바라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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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 협회 창원시 지부에서 1990년부터 매년 발행하고 있는 문예지. 『창원 문학』은 매해 10월에 한 해의 문학 작품을 거두는 의미에서 동인지를 묶는데, 2008년에 19호를 발간하였다. 특히 한국 문인 협회 창원시 지부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2007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창원 문학』 18집과 『물과 환경 그 생명의 음계』를 동시에 발행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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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창원시지부가 매년 10월 창원예술제에서 개최하는 시화전. 창원시는 지역문화 창달을 위하여 매년 가을 창원예술제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의 정서 함양에 힘쓰고 있다. 창원예술제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창원지부 산하 8개 지부에서 다양하게 행사를 준비하며, 한국문인협회 창원시지부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시 낭송 및 문인들의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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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채학영은 1848년(헌종 14)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1849년 윤4월 수군을 모아 이름을 불러 점검하는 일과 관련하여 계(啓)를 받고 파직되었다. 1849년 4월 채학영을 기리는 ‘행대도호부사채공학영영세불망비(行大都護府使蔡公學永永世不忘碑)’가 세워졌는데,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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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창원 지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창원지부는 창원 지역 예술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보호하며, 향토 문화예술 창달과 시민 정서 함양, 그리고 국제 예술 교류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문화체육부 소관 비영리 법인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따라 1987년 9월 10일 국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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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홍길모는 1851년(철종 2) 평산부사, 1854년 철원부사가 되었다. 1857년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가 1859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신병을 이유로 파직하기를 청하여 교체되었다. 창원부사로 재직 중 창원 지역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돈 5천 냥을 내놓아 1천 가구의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군포징수를 바로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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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수(膺受). 아버지는 홍재증(洪在曾)이다. 홍종영은 1875년(고종 12) 응제부(應製賦)로 전시에 직부(直赴)되어, 같은 해 경과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 후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 성균관 등의 관직을 거쳤다. 1886년 승정원동부승지에 특제되어 내무부 총무관, 이조참의, 성균관 대사성,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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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수도는 도시 정책 전반에 걸쳐 환경적 고려를 우선시하는 도시들 중 한 국가의 대표적 프로그램과 위상을 지닌 친환경 도시를 지칭한다. 환경수도는 ‘환경적으로 건전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미래 세대의 환경을 배려한 도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도시’로서 그 나라에서 환경에 관해서는 가장 선진적이며 모범적인 도시이다. 또한 도시의 하드웨어 등 물리적 구성 요소 뿐만 아니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