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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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에 설치된,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병마절도사영. 조선 시대에는 각 도(道)의 군사적인 지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병사(兵使)로 약칭되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두었다. 병사는 종2품 서반(西班) 관직으로 경상도에는 경상 좌도와 경상 우도에 각 1인씩 배정되었다. 병사는 도의 국방 책임을 맡아 유사시 군사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병사가 거처하면서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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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해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으로 이주해 온 장흥 고씨 입향조.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여덕(汝德)이다.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으로서 임진왜란 때 금산 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렬공(忠烈公) 고경명(高敬明)의 6세손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효열공(孝烈公) 고종후(高從厚)의 고손(高孫)이고 고부립(高傅立)의 증손(曾孫)이며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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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의병. 구응성의 본관은 창원(昌原). 구종길(具宗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진사 구명람(具明覽),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고, 아들은 구동(具棟)이다. 구응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아들 구동, 사촌 구응진(具應辰), 구응삼(具應參)과 창의하여 경상우병사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진주성을 진격해 오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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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의병이자 무신. 구응진의 본관은 창원(昌原). 구종길(具宗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구숙람(具叔覽), 어머니는 조벽(趙璧)의 딸로서 함안조씨(咸安趙氏)이며, 동생은 구응삼(具應參)이다. 구응진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살았다. 제포만호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 동생 구응삼, 사촌 구응성(具應星), 구응성의 아들 구동(具棟)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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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창원 노현(露峴)에서 왜적과 벌인 전투. 창원의 노현은 왜적의 무리가 진주와 전라도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요충지였다. 즉 부산에 상륙한 왜적은 3로(路)로 나누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중로(中路),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동로(東路),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서로(西路)로 진격해 왔다. 창원 지역을 내습한 왜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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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창원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의병장. 본관은 밀성. 호는 신암(新庵). 아버지는 어모장군 박량(朴亮)이다. 박연홍(朴連弘)[1556~1597]은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최강, 최대관, 정유경 등 경남 고성의 8장사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고성, 진동, 곤양, 사천 등지에서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초유사 김성일의 요청으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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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민령(安民嶺)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안민령(安民嶺)은 창원시 안민동과 진해구의 경화동·석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안민 고개라고도 부른다. 안민 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잇는 육로상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웅천현에서 창원부 읍성에 이르는 육로상의 지름길이었다.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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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일본이 창원을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전황에 대한 허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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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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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에 있는 왜성. 진해 안골 왜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302-2 일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전략상의 요충지로 1593년(선조 26)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이 성을 구축하고 1년씩 교대로 수비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다. 이순신의 조선 함대가 1592년 7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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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말(諸沫)의 묘소. 제말은 1567년(명종 22)에 경상남도 고성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자(字)는 성여(成汝), 호(號)는 가계(柯溪)이다. 제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정암(鼎巖)·문경(聞慶)·현풍(玄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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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창원성에서 조선 관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창원은 왜적 무리가 진주와 전라도 지역을 공략하는 데 있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요충지였다. 즉 부산에 상륙한 왜적은 3로(路)로 나누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중로(中路),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동로(東路),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서로(西路)로 진격해 왔다. 창원 지역을 내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