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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임금 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75
한자 1988年賃金鬪爭
영어의미역 Struggle for Higher Wages in 1988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88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88년 - 1988년 임금 투쟁 종결
발생(시작)장소 경상남도 마산시|경상남도 창원시
관련인물/단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정의]

1988년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

[역사적 배경]

1988년 초반부터 정부와 자본은 공권력을 앞세워, 구사대폭력, 위장폐업, 직장폐쇄, 3자 개입금지, 무노동 무임금, 방위산업체 쟁의 금지, 해고와 구속 등으로 노동자 투쟁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개별 단위노조 차원을 뛰어 넘어, 지역 혹은 전국 차원의 연대투쟁, 공동투쟁으로 맞서 싸웠다. 마산·창원 지역 노동자들은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을 중심으로 임금투쟁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88년 임금투쟁 목표는 최저 생계비 보장과 조직 확대 강화 두 가지였다. 임금이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임을 명확히 하여 임금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다. 따라서 임금 인상액의 기준을 노동 생산성 향상이나 물가 인상이 아닌 최저 생계비 확보라는 노동자 입장에 근거를 두어 정당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경과]

교섭을 지연 회피하는 회사 측을 압박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합법적 투쟁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쟁의 발생 신고와 냉각기간 경과 후 파업에 돌입하는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해 투쟁을 진행하였으며, 투쟁 방법도 의식적, 조직적으로 진행하였다. 집회나 시위, 농성만이 아니라 작업 거부, 태업, 리본 달기, 몸 벽보나 머리띠 두르기, 작업복 뒤집어 입기, 작업복 안 입고 작업하기, 넥타이 매고 작업하기, 점심 휴식시간의 집회 보고대회, 집단 월차 휴가 신청, 집단 조퇴, 점심시간 지연 전술 등 다양한 투쟁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런 합법적 투쟁 방식은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또한 정부와 경찰이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자본 측에서는 노동자들의 강고한 지역 연대를 깨기 위해 협상을 선별적으로 급속히 타결 짓거나 폭력을 가하는 등 교란작전을 감행하였다.

마무리는 회사 능력, 사회적 여건, 투쟁력 한계 등을 감안하여 마무리 짓게 되는데, 만족스럽지 못해도 조합원 합의나 조합원 총회의 찬반투표 결과를 거쳐 집행부는 도장을 찍게 된다. 그러나 일부 노조는 위원장의 독단적 타결로 물의를 빚었고, 집행부가 교체되는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결과]

최저 생계비 보장과 조직 확대 강화라는 임금투쟁의 목표는 이루어졌다. 상여금 인상과 수당 신설은 대부분 관철되고, 기본급 25~35% 인상 요구에 15%선 타결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요구액의 60~70%가 타결됨으로써 최저 생계비 보장이라는 목표를 이루어 냈다. 조직력 확대 강화는 목표 이상으로 달성되었다.

1988년 12월 말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은 가입노조 35개, 조합원 총수 27,000명에 달하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일부 힘 있는 노조는 무노동 무임금 정책을 무너뜨리고 100% 임금을 지급받았지만, 대다수는 특별 상여금이나 생산 장려금 명목으로 임금의 50% 정도만 확보함으로써 나쁜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1988년 임금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본과 노동 간에 가로놓인 모순과 갈등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경험했다. 이는 기업별 인식 틀의 울타리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임금인상이라는 경제주의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 전국의 노동자가 하나 되어 연대하는 노동자의 정치·사회적 의식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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