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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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태우기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민속놀이이다. 한때 산불 조심을 이유로 정부에서 금지하기도 했으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날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대동놀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봉산마을에서도 지금까지 달집태우기가 연행되고 있다. 본시 봉산마을에서 이루어지던 달집태우기는 ‘달에 집’이라 불렀으며, 바로 연접한 송정마을과 함께 행하던 민속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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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여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당산제는 봉산마을만의 동제가 아니다. 과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중단된 동제는 송정마을과 봉산마을만이 참여하는 제의였으나 이 동제가 중단되고 1980년대 새로 시작된 당산제는 자여마을의 4개 마을, 즉 봉산마을·용정마을·송정마을·단계마을이 모여서 함께하는 제의이다. 이렇게 범위가 확대되어 시작된 당산제는 그 역사가 2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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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광 옹은 “난 아무 데도 가도 안 하고, 이 마을에 살았다고, 봉산에서 태어났는데, 16번지로 살림을 나가지고 여태까지 살고 있지.”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봉산마을의 원로이다. 1919년 1월 21일 봉산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는 토박이다. 황봉광 옹은 형편이 좋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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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덕산리에서 조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5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 마을회관에서 단계리 주민 권영준(78), 이소수(69), 구길자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산리 이장 한판줄(65)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덕산마을에는 예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여름이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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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읍에서는 2008년 마을 이장직은 65세 이하의 마을 사람이 담당한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이 규정이 적용되면서 동읍에서는 65세 이상의 이장들이 많이 그만두고 새로운 이장이 선출되었다. 봉산마을에서도 2002년부터 마을 이장직을 담당하던 한판줄 씨가 스스로 물러나고 2008년 1월부터 황수남 씨가 이장이 되었다. 이장은 본시 선거로 선출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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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마을은 새를 뜻하는 ‘봉(鳳)’과 산(山)이 만나서 이루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마을이 전단산(旃檀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와 무관하지 않을 이름으로 생각된다. 봉산마을에는 마을의 여러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특히 자여마을에 속한 자연마을이기 때문에 자여역과 관련한 이야기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굿터-봉산마을 전단산 산자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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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서 당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5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 주민 권영준(78)과 봉산리 이장 한판줄(65), 봉산리 주민 이수(69)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의 당산목은 자여마을에 있다. 자여마을은 외단리, 용정1구·용정2구·용정3구, 단계리, 송정1·송정2구, 봉산리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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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마을 줄당기기는 본시 전단산 자락에서 시작되어 봉산마을의 가장자리를 흐르고 있는 하천 변의 골목길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의 줄당기기는 자여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당산나무 앞을 지나는 큰길에서 이루어진다. 이 큰줄당기기는 그 역사가 1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아가 매년 연행되면서 주민들에게 연례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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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여마을 당산제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시작된 마을제사이자 대동제이다. 이 제의는 해방 이전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봉산·송정 마을의 동제와 단계·용정 마을 동제의 맥을 이은 것이다. 그런데 이 제의는 과거의 것과 다르게 변화된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 그래서 여기에서는 해방 이전의 동제와 오늘날의 당산제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제의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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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동읍에 단감이 재배되기 시작한 지는 근 10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서 시작된 단감 재배는 김해시 진영에서부터 시작되어 동읍 일대로 번졌다. 그러나 봉산마을에서의 단감 재배는 인근 지역에 비해서 늦게 시작되었다. 봉산마을 사람들은 벼농사를 주로 지었으며, 이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봉산마을의 농지는 천수답(天水沓)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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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한 해를 모두 투자해서 임하는 것이다. 단시간에 파종에서 수확의 결실을 맺을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견뎌야만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사일이다. 이러한 농사일을 하다 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여러 사람의 일손을 한꺼번에 필요로 하는 작업도 있다.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동 작업을 할 때는 우리네 조상님들은 두레와 품앗이를 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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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마을은 자여마을에서 나누어진 지 채 15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전까지는 송정마을·용정마을·단계마을과 함께 하나의 자여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봉산마을 입향조는 자여마을의 입향조와 같다. 자여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예부터 창원에 터를 두고 형성된 창원구씨와 창원편씨로 알려져 있으며, 이 후 봉산마을로 그 생활권이 확대되어, 지금의 마을 입향조가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