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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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의 별미 전어를 두고 흔히 창원 지역에서는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거나,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되돌아온다.” 혹은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전어 먹는다.”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가을철 전어는 별미 중의 별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어 중에 붉은색을 띠고 있고 그 맛이 일품인 전어를 흔히 ‘떡전어’라 부르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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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에 설치된,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병마절도사영. 조선 시대에는 각 도(道)의 군사적인 지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병사(兵使)로 약칭되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두었다. 병사는 종2품 서반(西班) 관직으로 경상도에는 경상 좌도와 경상 우도에 각 1인씩 배정되었다. 병사는 도의 국방 책임을 맡아 유사시 군사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병사가 거처하면서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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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시가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시는 조선 시대에 웅천 혹은 웅신 등으로 불렸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군항 및 시가지가 새롭게 건설되었고 1912년에 기존의 웅중면과 웅서면을 포함하는 진해면이 되었다가, 1931년 진해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방 이후인 1955년 9월 1일에 진해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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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강이나 내, 좁은 바닷목에 배가 건너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나루란 말의 기원은 ‘나라(國)’에서 나왔거나 ‘나르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나라의 옛말은 ‘라라’이고, 이는 ‘나루’를 가리키던 명사로 곧 나라[국가]를 의미한다고 했다. 고대 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인근 부족 또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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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었던 내이포[제포] 수군을 관할하던 종 4품의 무관. 웅천의 내이포진은 왜구 침략의 요충지인 웅천현 남쪽 5리 지점에 설치되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가 1인 배치되어 조선 시대 수군 진을 관할하면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왜구들을 방비하였다.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왜구의 노략질은 고려 중기 이후에 극성에 이르러 1390년(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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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앞의 개. 『경상도 지리지』와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는 ‘내이포(乃而浦)’로 나오고,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는 ‘제포(薺浦)’로 나온다. 개 주위에 냉이가 많이 나 있어서 ‘냉이개’로 불렀다는 민간에서 전해져오는 어원설이 있다. 처음에는 ‘내이포’로 차자(借字) 표기하다가 뒤에는 ‘냉이 제(薺)’자를 써서 ‘제포’라는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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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은 한국사 개설서에도 이름이 나올 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세종 때 압록강 상류에 침입한 오랑캐의 추장인 이만주를 토벌하고 성을 쌓아 자성군을 두어 4군 설치의 기초를 만든 인물 정도로만 짧게 설명되고 있다. 최근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윤덕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최윤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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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대외 교역과 문화 교류. 경상남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2010년 7월 1일부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어 창원시가 되었다. 행정 구역 변천에 따라 통합과 분리 과정을 거듭해 왔지만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역사 발전 과정으로 볼 때 창원 지역은 바다와 강을 통한 교역과 문화 교류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고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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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왜인들의 숙박 시설이 설치되고 교역이 이루어진 장소. 왜관(倭館)은 조선의 개항장에 설치하여 왜인들이 교역하고 거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공간이다. 창원 진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왜관은 조선 시대 왜인들이 교역을 하던 무역처로 제덕 토성과 제덕동 괴정 마을 사이에 있었으며 왜관지(倭館址)는 지금도 ‘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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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덕왕 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 웅지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웅신현으로 고쳐서 의안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금주[김해]에 예속되었다가 조선 1452년(문종 2)에 웅신현과 완포현을 합쳐 웅천현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웅천현 건치 연혁조에는 “본래 신라의 웅지현이다. 경덕왕이 웅신이라 고쳐서 의안군의 속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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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성종 17) 창원[진해] 제덕동에 세워 운영되었던 수군 진영. 웅천 수군첨절제사영은 1484년(성종 15) 숙의 조숙기의 발안으로 결정되어 1486년(성종 17) 진해 제덕동 안지개 마을에 설치된 수군 진성이다. 이곳은 수군첨절제사가 지휘한 경상 우도의 주진으로 기능한 곳이다. 1398년(태조 7)에는 제포 수군 만호진이 도만호로 승격되어 경상 우도 수군도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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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제포(薺浦)를 1407년(태종 7)부터 1541년(중종 36)까지 기간 동안 왜인들에 대한 교린과 통제 정책의 하나로 개항(開港)한 사건. 태종은 1407년 다른 포구에는 왜선의 정박을 금지하고 경상좌우도의 도만호가 주둔하는 웅천(熊川)의 내이포(乃而浦)[薺浦]와 동래의 부산포(富山浦)를 개방하게 하였는데, 이로써 제포(薺浦)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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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포(薺浦)에 설치되었던 군사 주둔 지역. 제포(薺浦)에는 조선 초기에 우수영이 설치되었다가 얼마 후 경상우도수군첨절제사영(慶尙右道水軍僉節制使營)이 설치되었다. 제포에 설치된 진(鎭)은 군사상 방어의 필요성에서 지방의 요충지에 설치한 군사 주둔 지역으로 조선 후기에는 만호(萬戶)가 지휘하는 진해만의 해상 방어 기지가 되었다.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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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시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역사. 창원은 본래 굴자군(屈自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의안군(義安郡)로 고쳤고, 지금의 마산 지역인 회원현(會原縣)은 본래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두 현을 모두 금주(金州) 관하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고, 1282년(충렬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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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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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조선 시대 최초의 개항장.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속한 제포는 조선 초기 최초 개항지의 대표적인 장소로 원래 이름은 내이포(乃而浦)이다. ‘내이포’라는 명칭은 주위에 냉이가 많이 나 있어서 ‘냉이개’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내이포’로 표기하였다가 냉이 ‘제(薺)’자를 써서 ‘제포(薺浦)’란 한자말로 굳어졌다. 제포는 조선 초기 조정의 대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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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걸쳐 있는 조선 시대 토성. 진해 제덕토성은 웅신 고개에서 제덕산 능선으로 이어진 토성이다. 제덕토성의 축성 연대와 축성 목적을 정확하게 언급한 문헌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조선 시대 초기 내이포를 개항한 뒤 왜관을 두어 항시 거주하는 왜인의 수를 60명으로 제한하였고, 일반적으로 왜관의 외부에 목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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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왜인들과의 무역처. 왜관은 조선 시대 왜인들의 교역과 숙박을 위한 시설을 갖춘 무역처이다. 조선 왕조는 고려의 멸망이 왜구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왕조 개창 초기부터 화전양면책(和戰兩面策)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수군을 증강하여 해상에서 강력한 토벌 작전을 수행하는 한편, 왜인들에게 교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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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은 고대로부터 창원·김해 지역과 해외를 연결하는 접촉 통로 역할을 하였다. 가락국 허황후가 탔던 배가 진해구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처음으로 침략해왔던 지역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진해구 해안에 수군 관방과 왜관이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