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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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面二運 |
영어음역 | Dong-myeon Iun |
영어의미역 | Dong-myeon Iu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개설]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동면(東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동면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동면(東面) 이운(二運)은 동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리를 두고 있었다. 한편 당시 동면 이운은 부의 관문(官門)에서 동쪽으로 20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소속된 9개리는 구체적으로 용잠리(龍岑里)·신방리(新方里)·다호리(茶戶里)·가월리(加月里)·화목리(花木里)·두고산리(豆高山里)·고양리(高陽里)·석산리(石山里)·금산리(琴山里)였다.
[관련기록]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교남지(嶠南誌)』(1867~1873), 『영남읍지(嶺南邑誌)』(1895), 『창원읍지(昌原邑誌)』(1899) 등에 관련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경상도읍지』(1832)보다 약 40년 뒤에 편찬된 『교남지』에는 동면 이운에 속한 고을들이 오룡잠리(五龍岑里)·신방리(新榜里)·다호리(茶戶里)·가월리(加月里)·곡목리(曲木里)·두고산리(頭高山里)·고양리(高陽里)·석산리(石山里)·금산리(琴山里) 등 9개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경상도읍지』보다 약 60여 년 뒤에 편찬된『영남읍지』에서도 동면 이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오룡잠리(五龍岑里)·신방리(新榜里)·다호리(茶戶里)·가월리(加月里)·곡목리(曲木里)·두고산리(頭高山里)·고양리(高陽里)·석산리(石山里)·금산리(琴山里) 등 9개였던 것으로 이전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창원읍지』에서는 동면 이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가리산리(加里山里)·다호리(茶戶里)·곡목리(曲木里)·고양리(高陽里)·석산리(石山里) 등 5개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오룡잠리·신방리·가월리·두고산리·금산리가 소멸되고 가리산리가 등장하였다. 이는 오룡잠리·신방리·가월리가 통합되어 가리산리로 개편·개칭되었고 두고산리가 곡목리와 고양리에 분리·통합되었으며 석산리가 금산리에 통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천]
창원도호부는 1895년 창원군이 되었으며, 1908년에는 창원부가 되었다. 이 후 1980년 4월 1일 창원 지역 일원이 다시 창원시로 승격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용잠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용잠리가 되었고 신방리는 현재 창원시 동읍 신방리가 되었다. 다호리는 현재 창원시 동읍 다호리가 되었으며, 가월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월잠리(月岑里)가 되었다. 화목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화양리(花陽里)가 되었으며, 두고산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화양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화양리가 되었으며, 석산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석산리가 되었다. 금산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금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