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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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面三運 |
영어음역 | Dong-myeon Samun |
영어의미역 | Dong-myeon Samu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개설]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동면(東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동면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동면(東面) 삼운(三運)은 동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8개의 리를 두고 있었다. 한편 당시 동면 삼운은 부의 관문(官門)에서 동쪽으로 12㎞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소속된 8개리는 구체적으로 봉곡리(鳳谷里)·칠전리(柒田里)·용연리(龍淵里)·용남리(龍南里)·노촌리(蘆村里)·옥정리(玉井里)·본포리(本浦里)·북계리(北溪里)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기록]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교남지(嶠南誌)』(1867~1873), 『영남읍지(嶺南邑誌)』(1895), 『창원읍지(昌原邑誌)』(1899) 등에 관련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경상도읍지』(1832)보다 약 40년 뒤에 편찬된 『교남지』에는 동면 삼운에 속한 고을들이 봉곡리(鳳谷里)·칠전리(柒田里)·신촌리(新村里)·신현리(身峴里)·노촌리(蘆村里)·산남리(山南里)·본포리(本浦里)·북계리(北溪里) 등 8개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용연리(龍淵里)·용남리(龍南里)·옥정리(玉井里)가 소멸되고 신촌리(新村里)·신현리(身峴里)·산남리(山南里)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는 옥정리가 노촌리에 통합되고 본포리에서 신촌리가 분할되었으며 용연리와 용남리가 각각 산남리와 신현리로 개칭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도읍지』보다 60여년 뒤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도 동면 삼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봉곡리(鳳谷里)·칠전리(柒田里)·신촌리(新村里)·신현리(身峴里)·노촌리(蘆村里)·산남리(山南里)·본포리(本浦里)·북계리(北溪里) 등 8개로 이전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창원읍지』에서는 동면 삼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신촌리(新村里)·신현리(身峴里)·오봉리(梧鳳里)·산남리(山南里)·본포리(本浦里)·북배리(北背里) 등 6개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봉곡리·칠전리·북계리·노촌리가 소멸되고 오봉리와 북배리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는 봉곡리와 칠전리가 통합되어 오봉리로 개편·개칭되었고 노촌리가 신현리와 본포리 등에 분리·통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천]
창원도호부는 1895년 창원군이 되었으며, 1908년에는 창원부가 되었다. 이 후 1980년 4월 1일 창원 지역 일원이 다시 창원시로 승격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봉곡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봉곡리가 되었고, 칠전리는 현재 창원시 동읍 봉강리(鳳岡里)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연리·노촌리·옥정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노연리(蘆淵里)가 되었으며, 용남리 지역도 현재 창원시 동읍 노연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포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본포리가 되었으며, 북계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북면 월계리(月桂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