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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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平文氏 |
영어의미역 | Nampyeong M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재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문씨의 대종인 남평 문씨의 시조는 무성공(武成公) 문다성(文多省)이다. 그는 472년(신라 자비왕 15)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현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바위 위의 석함(石函)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이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문(文)’을 성으로,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그 후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져 남평을 관향으로 하였다. 시조의 탄강지인 바위에 ‘문암(文巖)’이라는 비를 세우고 못가에 장연 서원을 지어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중시조는 문익(文翼)으로,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으며 그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명문의 기초를 다졌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보급한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은 남평 문씨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1329년(고려 충숙왕 16)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배양리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고려 멸망 후 절의를 지켰고 효행이 지극하였다. 이에 왕명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효자정각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효자리로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의 아들 문중용(文中庸)·문중성(文中誠)·문중실(文中實)·문중진(文中晋)·문중계(文中啓) 등 다서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
[입향경위]
남평 문씨의 창원 입향조는 문재룡(文在龍)인데 1861년(철종 12)에 출생하였다. 증조부는 문남규(文南奎)이고, 조부는 문도석(文道碩)이며, 아버지는 문현목(文賢穆)이다. 원래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이어가지 못하다가 힘써 집안을 일으켰다. 청도(淸道) 사촌(沙村)에서 창원 월산(月山)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형제와 조카들이 모두 이거하여 살게 되었다.
[현황]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갈전리에 문익점의 후손들이 집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관련유적]
김종하의 『창원 군지』에 문봉호가 찬한 「문재룡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