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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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丁氏 |
영어의미역 | Changwon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태성 |
묘소|세장지 | 창원 정씨 세장지 -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 등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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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정덕성 |
입향 시조 | 정필진 |
정덕성을 시조로 하고 정필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성씨.
창원 정씨는 창원을 본관으로 한다. 그러나 현재 창원에 세거지나 집성촌은 없다.
창원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의 문종과 선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대양군(大陽君)에 봉록되었다. 그러나 곧 참소를 당하여 조선에 유배되었는데, 이때가 신라 문성왕 때이다. 정덕성의 둘째 아들인 정응도(丁應道)가 신라에 공이 있어서 나주군(羅州)에 책봉되어 호를 금성군(錦城君)이라 하였다.
창원 정씨의 입향조는 정덕성의 손자이자 정응도의 아들인 정필진(丁必珍)으로, 역시 신라에 공을 세워 창원(昌原)에 책봉되어 호를 의창군(義昌君)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창원 정씨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의 아들인 정병쇄(丁丙曬)는 도제조(都提調)를 지냈고, 정병쇄의 아들 정언주(丁彦柱)는 문하시중 태사령을 지냈다. 정언주가 경명왕의 둘째 딸과 혼인하여 정광순(丁光純)을 낳았다.
벼슬이 옥당박사문하시중태사령(玉堂博士門下侍中太史令)에 이르렀다. 정광순의 아들은 정우(丁祐)로 고려 때 검교 별상(檢校別相)을 지냈다. 정광순과 정우 부자의 묘는 창원시 북면 지개리 뒷산에 있다. 이후 세계가 불분명하여, 창원 정씨는 고려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정연방(丁衍邦)을 중시조로 한다. 이를 선창원 정씨(先昌原丁氏)라고 한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정난 일등 공신에 책록되어 창원군에 봉해진 정관(丁寬)을 중시조로 하는 일파를 후창원 정씨(後昌原丁氏)라고 한다.
창원 정씨들의 선대 묘역이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 등명산 동남쪽 산록, 운암 서원 동편 능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