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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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始明 |
영어음역 | Bak Simyeong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화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정용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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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
성별 | 남 |
[정의]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활동사항]
박시명은 1400년대 후반 창원도호부 사화(沙火)[현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살았는데, 당시 참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효를 다하였다.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출사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어 출사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93세에 죽자 매우 애통해하며 여막살이를 하였으며, 아버지를 봉양하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어머니의 상기(喪期)가 막 끝나고 아버지가 96세에 죽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부모를 합장한 다음 계속 여막살이를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전(奠)을 드리고 출입 때마다 부모님 묘소에 생시처럼 문안을 올렸다.
어느 날 밤중에 큰 바람과 함께 불이 나 부모의 무덤까지 번지게 되어 구제할 길이 없게 되자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갑자기 바람이 방향을 돌려 불이 꺼지는 기적이 있었다. 이에 향리 사람들이 하늘이 박시명의 효성에 감동되어 내린 이적이라 하며 박시명의 효행을 본받아 실천하였다. 17년 동안 어버이의 무덤을 지킨 박시명의 효행이 알려지면서 1494년(성종 25)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은일(隱逸)로 천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502년(연산군 8) 정려가 내려지고 조세와 요역이 면제되었다. 정려비 효자참군박시명정표려(孝子參軍朴始明旌表閭)가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비석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