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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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光益 |
영어음역 | Jo Gwangik |
이칭/별칭 | 가회(可晦),죽와(竹窩),취원당(翠遠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지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긍기 |
성격 | 문신|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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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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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37년![]() |
몰년 | 1578년![]() |
본관 | 창녕 |
대표관직 | 평안도도사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조광익(曺光益)[1537~1578]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가회(可晦), 호는 죽와(竹窩)·취원당(翠遠堂). 아버지는 조윤신(曺允慎)[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조광익은 1561년(명종 16) 생원이 되었다.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76년(선조 9) 감찰로 있으면서 문과 중시에서 장원을 하였다.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정려되었고, 병조좌랑과 형조정랑을 거쳐 평안도도사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이다.
저서로 『취원당선생문집(翠遠堂先生文集)』이 있다.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에 있다.
효자로 정려(旌閭)되어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에 정려각이 있고, 그곳에 있는 오봉서원(五峰書院)에 봉향되었다. 오봉서원은 대원군 때인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8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