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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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敬中 |
영어음역 | Hwang Gyeongjung |
이칭/별칭 | 직지(直之),오촌(梧村),회창군(檜昌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긍기 |
[정의]
조선 중기 창원대도호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지(直之), 호는 오촌(梧村).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근중[1560~1633]의 아우이다.
[활동사항]
황경중은 1602년(선조 35) 문과에 급제하여 1603년(선조 36) 검열이 되었고, 1604년(선조 37) 대교(待敎)가 된 데 이어 승정원 주서, 예문관 대교, 설서(說書)가 되었다. 1605년(선조 38) 홍문관 부수찬에 이어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에 병조좌랑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고, 1607년(선조 40)에 성균관 전적, 홍문관 수찬, 홍문관 부교리, 사간원 헌납이 되었으며, 1608년(선조 41)에 세자시강원 겸 사서가 된 데 이어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가 되었다.
1610년(광해군 2)에 낭청(郞廳)이 되었고, 그 뒤 세자면복주청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1612년(광해군 4) 돌아와 강원감사가 되었고, 1615년(광해군 7) 공홍감사가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에는 회창군(檜昌君)으로 봉해진 데 이어 분병조참판이 되었다.
인조반정 후 교리로 있다가 파직되었으나 그 뒤 이괄(李适)[1587~1624]의 난 때 파주목사가 되었고, 1625년(인조 3) 5월에 김해부사로 도임하여 1627년(인조 5) 정월까지 재임하다가 파직되었으나, 곧 원주목사가 되었다. 그 뒤 창원대도호부사로 재임하던 중 1630년(인조 8)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 범애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