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835 |
---|---|
한자 | 社稷壇 |
영어음역 | Sajikdan |
영어의미역 | Altar for the State Guardian Deitie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노성미 |
원소재지 | 사직단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
---|---|
성격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수령이 국왕을 대신하여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에게 제사 드리는 사단(社壇)과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 드리는 직단(稷壇)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도 의식을 행하였다. 전통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좌조 우사(左祖右社)’에 따라 도성(都城)을 건설할 때 궁궐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두었다. 토지와 오곡은 민생의 근본이므로 삼국 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직단을 설치하여 왕이 친히 나가서 제사를 올렸다. 지방에서는 성주(城主)가 제주(祭主)가 되었으므로 창원은 창원 도호부의 부사가 제사를 주관하였다.
『창원부읍지』 ‘단묘’에 의하면, “창원의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2리에 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경상도 창원 도호부 ‘사묘’에 의하면,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 서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직단의 위치는 창원 도호부가 합포성에 있을 때의 사직단이다. 임진왜란 후에 창원 도호부 관아는 의창 읍성으로 옮겼으므로 이때 사직단도 같이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직단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창원 사직단의 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흔적은 없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남원 사직단의 형태를 참고하면, 창원 사직단의 규모와 형태는 사단과 직단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3단의 방형[사각형]으로 단을 세우고 계단이 세 군데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의 사직단에서는 그 고을의 성주가 제주가 되어 매년 정월에 농사가 시작되기 전 사직단에 나아가 고장의 편안과 풍년을 빌었다.
현재 창원 사직단의 터는 정확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