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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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岩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진서면과 양전면이 통합되어 진전면으로 개칭되어 창원군에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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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0년 - 일암리 경상남도 의창군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일암리 경상남도 마산시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2010년 7월 1일 - 일암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으로 편입 |
법정리 | 일암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91호 |
인구[남,여] | 206명[남자 110명, 여자 96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일암리의 옛지명은 일음리로 너른 마을의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추정된다. 일음리와 같은 지명인 비라리도 너른 곳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일암리는 일음리를 자음으로 읽게 되면서 ‘음’이 ‘암’으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파생된 지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암리에 속한 자연 마을 중 들땀은 일암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들에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며 담안이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일암리는 『구 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일음리로 확인되며 창원부 양전면에 속해 있었다. 일암리라는 지명은 『신구대조 조선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서면과 양전면을 통합하여 진전면으로 개칭하고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 창원시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 합포구에 편입되었고,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의 출범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일암리는 적석산[497m] 국수봉의 북동쪽 사면에 위치한 마을로 뒤로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 북동쪽에는 동서방향으로 진전천이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지형에 입지한 마을이다. 적석산에서 발원한 작은 지류들에 의해 형성된 침식 분지에 마을이 입지하고 있다.
[현황]
일암리는 2013년 4월 현재 91세대에 남자 110명과 여자 96명의 총 206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일암리에 속한 자연 마을로는 일암, 대방, 들땀[남안], 삼산동, 안땀, 안뻘[내평] 등이 있다.
일암리는 적석산에서 발원한 지류의 상류부에 일암 제1 소류지와 일암 제2 소류지가 있으며 주로 벼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일암리에는 성구사와 도산 서당, 일신재, 존양재를 포함한 경상남도 기념물 제244호의 마산 성구사 일원이 위치하고 있다. 성구사는 충신을 모신 사당이며 팔작 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건축되어 있다. 현재 위치의 성구사는 일암리의 서재골에서 도산 서당과 함께 1914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성구사 일원에는 도산서당, 일신재, 존양재 등이 함께 입지하고 있다.
또한 성구사 일원에는 1919년 4월 3일 진동과 진전면 일대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인 4.3 삼진 의거가 시작된 곳으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만드는 등 거사를 모의했던 4.3 삼진 의거 발상지[경상남도 기념물 제245호]도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