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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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德-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주 |
개설 시기/일시 | 1910년 - 양덕[양동] 지역 마산부 내서면으로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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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사율리, 산호리, 봉정리를 병합, 양리로 창원군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43년 - 양리 마산시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58년 8월 15일 - 양덕동 설치 |
변천 시기/일시 | 1970년 1월 1일 - 양덕동 1·2동으로 분동 |
변천 시기/일시 | 1979년 5월 1일 - 양덕동 1·3동으로 분동 |
변천 시기/일시 | 1997년 5월 12일 - 양덕2동 양덕 3동을 통합 |
변천 시기/일시 | 2010년 7월 1일 -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 2동에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 2동으로 개칭 |
행정동 | 양덕 2동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 2동 |
성격 | 행정동 |
면적 | 1.73㎢ |
가구수 | 10,545 |
인구[남,여] | 30,474명[남자 15,419명, 여자 15,055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속하는 양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명칭 유래]
『경상도 읍지』와 『영남 읍지』에서 창원 도호부 서면 일운에 속한 방리로 나오는 양춘덕리(陽春德里)가 지금의 양덕동을 이룬 옛 마을로 추정된다. 근대에 이르러 양동(陽洞)으로 바뀌었으며 이후 양동은 사율리(斜栗里) 등과 합쳐져 양덕리(陽德里)가 되었다. 본래 춘덕리(春德里)이던 것이 양(陽)이 덧붙여져 양춘덕리가 된 것이며, 이후 ‘양춘덕리’의 표기에서 춘이 생략되어 양덕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생성 의미는 ‘동쪽에 있는 마을’을 뜻할 것이다. 춘(春)은 공간적 개념으로 전이되면 동(東)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양춘덕리는 동쪽과 상관성을 지닌 마을이라 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양덕 2동은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양동 또는 양덕이라 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합에 의하여 사율리 일부와 외서면의 산호리 일부, 그리고 부내면의 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리라 해서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43년 마산시 구역 확장에 의하여 마산시에 편입되고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조례 제126호에 의해 양덕동으로 고쳐졌다. 1970년 1월 1일 마산시 조례 제393호에 의해 양덕 1·2동으로 분동되고 다시 1979년 5월 1일 마산시 조례 제816호에 의해 양덕 1동과 3동으로 분동되었다.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 2동으로 개칭되었다.
[자연 환경]
근주천의 하구 우안에 위치하여 벼농사를 많이 지었던 평지였으나, 수출자유지역에 각종 공장이 입지하면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하였고, 현재는 고급주거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황]
양덕 2동은 3·15 아트 센터, 마산 종합 운동장, 양덕삼각지 공원, 창원 MBC, 경남 도민 일보사, 고속 버스 터미널이 소재하고 마산역과 시외 버스 터미널에 인접해 있는 문화·예술·체육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다. 현재 면적은 1.73㎢이며 총 10,545가구에 30,474명[남자 15,419명|여자 15,0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으로 산호동, 북쪽으로 양덕 1동, 동쪽으로 봉암동, 서쪽으로 석전동, 회원 1동과 이웃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