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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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帝時期-鎭海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윤상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06년 8월 - 진해만 일대 군항 예정 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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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사항시기/일시 | 1910년 - 진해 군항, 시가지 건설 본격화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2년 1월 - 웅중면과 웅서면 통합, 진해면으로 개편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2년 - 진해 방비 대사령부, 진해 우체국, 진해 심상 고등 소학교 설치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3년 - 진해 경찰서, 부산 상업 은행 진해 지점 설치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4년 - 진해 헌병 분대 설치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4년 3월 - 마산부에서 창원군 분리, 진해면 창원군으로 편입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6년 - 진해 요항 사령부 등 군 부대와 관공서 설치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17년 10월 - 면제 시행으로 진해면이 됨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21년 - 진해 공립 보통학교 설치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23년 - 일본 제3 해군구 요항 확정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31년 4월 - 읍면제시행으로 창원군 진해읍으로승격 |
특기사항시기/일시 | 1955년 9월 - 진해시 승격 |
특기사항시기/일시 | 2010년 7월 - 진해시와 마산시, 창원시에 통합 |
[정의]
일본 해군의 군사 도시이자 근대적 계획도시로 건설된 일제 시기의 진해.
[행정구역의 개편]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까지의 진해시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웅천현(熊川縣)이었으나 1912년 1월 웅중면 전부와 웅서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해면(鎭海面)으로 개편하면서 ‘진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 일본 해군의 군항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바다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가진 ‘진해’라는 지명을 1908년 웅천군과 함께 폐지된 진해군[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진전·진북 지역]에서 옮겨와 붙인 것이다. 이후 1914년 3월 마산부에서 창원군이 다시 분리됨에 따라 진해면은 웅남면, 웅읍면, 웅동면 등과 함께 창원군의 관할 구역이 되었고, 1917년 10월부터 시행된 ‘면제’에 의해 지정면이 되었다. 지정면은 읍의 전신이 되는 것으로 전국에 24개 면이 있으며, 경상남도에는 진주군 진주면, 창원군 진해면, 통영군 통영면 3개 면이 있었다. 1931년 4월에는 읍면제의 시행에 따라 읍으로 승격되어 해방을 맞을 때까지 창원군 진해읍으로 존재하다가 해방 후인 1955년 9월 진해시로 승격되었다.
[진해 군항과 시가지의 건설]
일본은 러일 전쟁 직후부터 전쟁에 대비하는 해군 기지를 한반도에 설치하기 위해 조사 작업을 진행한 끝에 1906년 8월 진해만 일대를 군항으로 예정 고시하고 1910년부터 진해 군항과 시가지 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이와 함께 여러 가지 근대적 시설을 세웠다. 1912년 진해 방비 대사령부, 1913년 진해 경찰서, 1914년 진해 헌병 분대, 1916년 진해 요항 사령부 등 군 부대와 관공서, 1912년 진해 우편국, 1913년 부산 상업 은행 진해 지점, 1912년 진해 심상 고등 소학교, 1921년 진해 공립 보통학교 등 많은 근대적 시설을 세웠다. 오랜 기간의 공사를 거쳐 1922년 진해 군항 건설이 완료되고 1923년 일본 제3 해군구의 요항(要港)으로 확정되면서 진해는 일본 해군의 군사 도시이자 식민지 하의 계획 도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