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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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설립 시기/일시 | 1915년 - 진해 청년단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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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19년 - 진해 청년단에서 진해 청년 구락부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23년 - 진해 구락부에서 진해 청년회로 개칭 |
성격 | 무산운동 |
설립자 | 주병화(朱秉和)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진해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변천]
1923년 4월 진해 청년 구락부가 정기 총회를 열어 진해 청년회로 개칭하였다. 1915년 진해 청년단을 출발로 해 1919년에는 대동 구락부와 통합하였고 1923년에는 진해 청년회가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3년 10월 13일 일본 토요야마 대학 졸업생 엄용식, 쥬오우 대학 졸업생 이영실을 초청하여 경화동 불교 포교당[현 정암사]에서 ‘인류의 8할은 사회적 빈곤인’, ‘진리의 힘’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그러나 경찰의 주의가 엄격해 연사가 제대로 강연할 분위기가 되지 못하였다.
1924년 12월 4일 진해 공립 보통학교[현 경화 초등학교] 강당에서 강연회를 열고 박상묵의 사회로 진순도(陳順道)가 독창을 하였고, 하한철(河漢撤)이 ‘연애의 발달과 역사적 고찰’, 정원준(鄭元駿)이 ‘인생의 고통’, 정소준(鄭小駿)이 ‘현실주의와 철학’, 김태수(金泰洙)가 ‘농촌 계몽의 요소’ 등을 강연하였다.
1926년 12월 5일 오후 3시 진해 청년회에서는 진해 경화동 경남 여관에서 1926년 봄에 반기독교 사건으로 마산 형무소에서 오랫동안 복역하다가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4명의 위안회를 개최하였다
1926년 12월 5일 제4회 임시 총회를 개최하였다. 김태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임시 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의결되었다.
1. 진해 각 단체 연합 망년회 개최의 건.
2. 진해 각 단체 연합 도서관 설치의 건.
3. 도서관 준비 위원 선출[김태수 등 7명].
1926년 12월 15일간이 도서관 설립 준비로 회원은 균등하게 1원씩 갹출하였고 특별 기증되는 금품 및 서적 등을 수집하였다. 1927년 1월 하순경 일본 고베 상서 서점에 주문한 각종 서적이 1927년 2월 20일 도착하여 이날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1927년 5월 8일에 황금찬의 사회로 진행된 제4회 정기총회에서는 신간회 가입 문제가 토의되었다.
1927년 11월 6일 회원 98명에 위원 주병화 등 8명이 덕산(德山), 이동(泥洞), 석동(石洞), 경화동(慶和洞) 등지에서 노동 야학교를 설치하여 문맹 퇴치와 계몽 운동을 펼쳤다.
[현황]
진해 청년회로 개칭된 후 임원을 위원제로 하고 이후 청년 단체로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27년 당시의 회원은 98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