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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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通學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남재우 |
인가 시기/일시 | 1906년 3월 10일 - 개통 학교 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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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시기/일시 | 1906년 - 개통 학교 개교 |
폐교 시기/일시 | 1915년 - 개통 학교 폐교 |
개칭 시기/일시 | 1917년 - 개통 학교 웅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편 |
최초 설립지 | 웅천 개통 학교 - 웅천 북부동 505번지 |
주소 변경 이력 | 웅천 개통 학교 - 웅천현 동헌 서제고(書齊庫) |
성격 | 사립 근대교육기관 |
설립자 | 주기효|김구석|양주용 |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지역에 있엇던 교육 기관.
[변천]
근대 교육 기관인 사립학교가 설립된 것은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 사람들의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함양을 위하여 사립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는 등 국민 계몽에 앞장섰다. 사립학교는 민족 운동의 터전이 되었고, 민족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시 사립학교의 교육 정신은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 양성,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 운동의 지도자 양성, 애국 교과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 과외 활동을 통한 애국 사상의 함양, 교육 실천을 통한 배일 운동으로 나타났다. 진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민족적 성격이 강한 사립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개통 학교는 주기효(朱基孝)를 비롯한 김구석(金龜錫), 양주용(梁柱庸) 등이 1906년 웅천 북부동 505번지에 설립하였다. 보통과와 2년제 고등과를 설치하였고, 교장은 주기효, 영어는 양주용이 맡아 가르쳤다. 그 후 어려운 경제난과 일제의 탄압 때문에 웅천현 동헌 서제고를 교사로 활용하다가 1915년 폐교되었다. 1917년 웅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지금은 웅천 초등학교로 남아 있다.
[교육 활동]
보통과와 2년제 고등과가 설치되었다. 교장에 주기효, 영어 담당은 양주용이었다. 보통과는 수업료를 냈으나 고등과는 관비(官費)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