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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 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03
한자 熊川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집필자 최정용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 웅천을 본관으로 하고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웅천 김씨(熊川金氏)의 선계(先系)는 문헌의 실전으로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다. 『웅신백사적기(熊神伯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말에 견훤이 수차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의 명을 받아 5,000 장병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이를 격퇴시키고 돌아오자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웅신현(熊神縣)을 식읍으로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곳에 정착세거하면서 관향(貫鄕)을 웅천으로 삼게 되었으며, 조선조에서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연원]

웅천 김씨의 본관인 웅천(熊川)은 신라 때에는 웅지현(熊只縣)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웅신현(熊神縣)으로 개칭되어 의안군(義安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의 속현으로 합병되었다. 조선에 들어 세종 대에 첨절제사가 설치되고, 문종 때에 웅천현(熊川縣)으로 독립했으며, 이때 완포현(莞浦縣)을 병합하였다. 조선 시대인 1510년(중종 5)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곧 현으로 복구되었다. 웅천의 별호는 병산(屛山)·웅산(熊山)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웅천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웅천군이 되었다. 1910년 마산부가 설치되면서 마산부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입향 경위]

웅천 김씨의 선계(先系)는 문헌의 실전으로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다. 웅천 김씨가 웅천에 세거하게된 것은 후삼국 시기 후백제의 견훤이 수차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의 명을 받아 5,000 장병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후백제군을 격퇴시키고 돌아왔다. 경애왕이 그 전공을 표창하여 웅신현(熊神縣)을 식읍으로 하사(下賜)하였으며, 웅신백의 후손들이 웅천에 정착하면서 관향(貫鄕)을 웅천으로 삼게 되었다.

[현황]

웅천 김씨 종친회와 연락을 취하여 진해 지역 문중의 상황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으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진해 문화원에서도 진해 지역 웅천 김씨의 현황에 대하여 잘 파악이 되고 있지 않아 진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웅천 김씨의 상황이 불명확하다. 다만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웅천 김씨는 1985년에는 총 128가구 461명, 2000년에는 총 119가구 34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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