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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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騶山洞山神祭 |
이칭/별칭 | 산제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리아 |
의례 장소 | 추산동 산제당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 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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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신제 |
신당/신체 | 6.6㎡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에서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
[개설]
추산동 산신제를 올리는 산제당은 지역민들의 민간 신앙 제단으로 기능을 해 왔다.
특히 산제당에 자리한 당산목 엄나무 목신은 시대의 변란을 예고했다는 구전이 전한다. 또한 목신각 아래 용왕전은 바다의 일이나 뱃길의 무사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로도 기능하여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기도처로 자리매김하였다.
[연원 및 변천]
추산동은 원래 합포현(合浦縣)에 속한 지역으로 조선 시대 태종 때 창원부에 소속되었고, 1910년(융희 4) 마산부제 실시로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성리, 성호리, 성산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일본식 지명인 신정(新町)이라 하였다. 1946년 추산동으로 바뀌었고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마산시 추산동이 되었으며, 1989년 마산시 합포 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0년 합포구의 신설로 마산시 합포구 추산동이 되었고, 2010년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변화를 겪은 추산동은 고려 시대 진성인 회원현성이 있던 환주산[현재 추산]이었고 중턱에 있는 산신각은 오랜 기간 민간 신앙의 제단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각의 규모는 6.6㎡ 정도로 내부에는 좌불상 1폭과 산신도 1폭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산신도 1폭만 전한다.
[축문]
특별한 격식이 없다.
[현황]
무학산의 한 줄기인 환주산[騶山] 중턱에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산제당이 있다. 지역민들은 환주산을 ‘공신당산(公神堂山)’이라고 불렀는데 공신(公神)은 공적 제당을 의미한다. 1933년 이후 불교 조계종 성덕암이 산제당이 있는 곳에 세워지자 지역민들은 성덕암을 ‘산제당 절’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불교 사찰로 인식되기 이전 산제당이 있는 곳에 세워진 절로 받아들여졌음을 볼 수 있다.
산제당의 당산목인 천년 노거수 엄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목신각이라 불렀다. 성덕암이 들어서기 전부터 목신각 바로 앞에 산신각과 용왕전이 있었고, 산신각의 규모는 6.6㎡ 정도로 내부에는 좌 불상 1폭과 산신도 1폭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의 오랜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곳 산제당으로 와서 나라와 백성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구전이 있으며, 1950년 늦은 봄 어느 날 갑자기 이 고목나무에서 붉은 물이 흐르기 시작하여 2~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산제당에 자리한 엄나무 목신은 성덕암이 들어선 뒤에도 오랜 기간 민간 신앙의 제단으로 기능을 하였고, 목신각 아래 산제당 샘은 물의 영험이 알려져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자 인위적으로 매워진 상태이다. 그리고 용왕전은 어로나 뱃길의 무사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로 기능한다.
따라서 산제당 또는 공신당산은 신목과 산신의 영험, 샘물의 영험까지 어울려 마산의 대표적인 기도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