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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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山山神祭 |
이칭/별칭 | 곰메 사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우선 |
의례 장소 | 산신당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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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4월과 10월 |
신당/신체 | 산신당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웅산 산신제는 매년 4월과 10월에 웅천 마을을 지켜주는 웅산의 산신에게 마을 주민들이 행하는 집단 제의이다.
[연원 및 변천]
웅산 산신제의 연원은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매년 “4월과 10월에 사람들이 웅산에 모여 산신을 모시고 내려와 종고(鐘鼓)를 치며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는데 원근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와 제사를 지낸다”고 적고 있다. 이는 매년 봄과 가을에 지역 주민들이 모여 대제를 올렸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산에서 신을 맞이한다’ 함은 산신제를 뜻하는 것이다. 봄의 대제(大祭)는 풍농 기원제, 가을의 대제는 천신제(薦新祭) 성격을 띠고 있다.
진해의 명산인 웅산은 조선 시대 웅지현·웅신현·웅천현의 진산으로 고을을 지켜 주는 주산이었으며 관아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하지만 웅산의 산신제에 대한 기록은 『해동지도』의 웅천현도(熊川縣圖) 지지(地志)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되어지며, 그 후로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까지 산신제가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언제 무슨 사연으로 단절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웅산은 서진해 지역에서 동쪽으로 보아 봉우리에 큰 바위가 있는 곳이다. 웅산(熊山)은 고유명 ‘메’의 차자 표기로 ‘메’란 ‘신령스러운 산’을 뜻한다. 그 꼭대기에 산신을 모시는 산신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제단의 자취만 남아 있다.
[절차]
제일이 다가오면 관아의 위임을 받은 무당에 의해 제의 절차가 진행된다. 무당은 신을 모시는 영신(迎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기간 동안 모든 의례를 주관한다. 먼저 영신은 신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 신을 모시고 하산하는 의례를 행한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북을 치면서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신을 즐겁게 하는 오신 행위를 한다. 이는 신을 즐겁게 해야만 고을이 평안하고 풍년을 약속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한 의례인 제사를 올린다. 이는 웅산의 산신을 모시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대접을 잘하여 신탁(神託)을 내릴 때까지 며칠간 머물도록 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