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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부인의 시혜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038
한자 姜氏婦人-施惠談
이칭/별칭 질마산 효청각 강씨 부인(質馬山 效淸閣 姜氏婦人),선덕(善德),정부인(貞夫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1길 18[교동리 746-1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강씨 부인의 시혜담」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관련 지명 효청각(效淸閣)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鎭東面) 교동 1길[야촌 마을]지도보기
성격 구비 전설
주요 등장 인물 강씨 부인
모티프 유형 이웃에 자선을 베푼 선덕(善德)과 적덕(積德)의 시혜담(施惠談)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鎭東面) 야촌(野村) 마을 질마산(質馬山) 입구에 세워져 있는 효청각(效淸閣)에 담긴 강씨 부인의 시혜담(施惠談).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鎭東面) 야촌(野村) 질마산(質馬山) 앞뫼뿌리의 나지막한 평지에 고색이 짙은 석조 비각이 하나 서 있다. 이것이 효청각(效淸閣)이다.

이 각(閣)은 강씨 부인(姜氏婦人)의 시혜비로 부인은 헌종(憲宗) 갑진년(甲辰年)인 1844년에 출생하여 밀성 박씨(密城朴氏) 정식공(正植公)의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종(高宗) 병술년(丙戌年)인 1886년 6월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었으나 성인 관례(成人冠禮)를 마친지 4년 만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가세는 빈궁해지고 선영을 모시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재물을 모아 저축하고 남편의 시가에 정성과 의리로 대하였으며 향리의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선을 자주 베풀었다.

수년에 걸쳐 흉년이 들어 민생이 더욱 어려워지자 계축년(癸丑年)인 1913년 춘궁기(春窮期)에 주민들이 세금을 낼 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긴 부인은 창고에 있는 곡식을 내어 어려운 이웃에 나누어 주었다. 또한 호세(戶稅) 전액을 부담하여 천여 금을 나라에 받쳐 동네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고 안심하게 살 수 있도록 희사(喜捨)하였다. 부인의 선덕(善德)을 주민들이 칭송하고 찬미함에 나라에서는 부군 박정식(朴正植)에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증직(贈職)하고 강씨 부인(姜氏婦人)에게는 정부인(貞夫人)의 품계를 내리게 되어 비로소 효청각(效淸閣)을 짓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강씨 부인의 시혜담」의 모티브는 강씨 부인의 선덕(善德), 적덕(積德), ‘전통 사회 공동체 구현을 위한 사회 미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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