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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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詩洛岩窟-貞烈夫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3년 - 「시락 암굴과 정렬부인」 『마산시 문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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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시락 암굴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낙동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안의 절벽 밑 암굴 |
성격 | 전설|인간담|열부열녀담 |
주요 등장 인물 | 부인|왜병 |
모티프 유형 | 열녀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해안의 절벽 밑에 있는 시락 암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전쟁에 패하여 물러가면서 암굴에 피난해 있던 부부를 보자 남편은 죽이고 부인을 잡아가는 도중 정렬을 지키기 위한 부인의 기지로 적군의 배를 침몰시키고 자신도 자결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마산시에서 발행한 『마산시 문화』에 「시락 암굴과 정렬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내용]
마산시 진전면 시락리 낙동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안의 절벽 밑에 암굴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시락 암굴이다.
평소 7,8명의 인원이 수월하게 들어앉을 수 있는 이 암굴은 만조(滿潮)때가 되면 바닷물이 입구에까지 차오르지만 그 이상은 더 물이 들지 않으며 옛날부터 난리가 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더러 이곳에 와서 피난을 하였다고 전해 온다.
옛날 임진왜란 때 어느 젊은 부부가 난을 피해 이 암굴에 와서 숨어 지냈다. 때는 마침, 해상의 도처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고가 한창 드높던 무렵이었다. 도망치던 왜적의 배 한 척이 때마침 이 근방을 지나다가 문득 암굴 속의 인기척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대번에 이 암굴을 수색하여 젊은 부부를 끌어낸 다음 남자는 그 자리에서 무참하게 베어 죽이고 기절한 부인을 배에 싣고 달아났다.
얼마 후에 부인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은 적병들에 의해 사지가 결박되어 있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물속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미 그마저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번번이 욕을 보이려고 달려드는 왜병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부인은 안간힘으로 이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연약한 여자의 힘이 이 많은 짐승들을 어떻게 감당하랴. 장차 부인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날 밤 부인은 힘에 지쳐서 쓰러진 채로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뱃전에서 남편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 때 문득 부인의 머릿속에 한 가닥 계책이 스쳐 갔다.
‘오냐, 이 원수는 내 기어이 갚고야 말리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고 나서 부인은 자기의 몸속 깊이 지니고 있던 장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하여 부인은 앉은 자리에서 배 밑바닥을 파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은 오랫동안의 패전에 심신이 모두 지쳐 있었으므로 모두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부인은 다만 일심으로 손을 놀렷다. 오직 나라와 남편의 원수를 갚으리라는 집념 하나로 뱃바닥을 파들어 갔던 것이다.
이윽고 배 밑바닥에 쥐구멍만한 구멍이 하나 뚫렸다 부인은 계속 그 구멍을 넓혀나갔다. 부인은 천지신명께 배 밑바닥이 완전히 뚫릴 때까지 원수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칼질을 하였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일인데 시각은 이미 밤을 지나고 멀리 수평선 위에서 희미하게 먼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부인은 이 때 마지막 남은 구멍 하나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였으니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구멍을 뚫는데 성공을 하였다. 그 구멍으로 줄기찬 바닷물이 펑펑 차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부인은 천지신명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큰 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한편 왜적들은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그들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우왕좌왕하다가 배와 함께 침몰되어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모티프 분석]
「시락암굴과 정렬부인」의 주요 모티브는 시락 암굴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지명담이며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고 자결하는 정렬 부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인간담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목숨을 걸고 왜적을 물에 빠뜨린 것은 그 당시 강조하고 있던 충과 정열을 모두 보여주는 교훈담이 될 수 있다. 한 여인의 지혜로 왜군과 그들의 배를 침몰시키는 이야기는 지혜담으로도 분류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