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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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山神靈-憤怒 |
이칭/별칭 | 부엉등,부엉산,제황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화선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3년 - 「부엉산 산신령의 분노」 『얼』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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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제황산 - 경남 창원시 진해구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부엉산 산신령|묘법사 주지|일본 해군 사령관 |
모티프 유형 | 역사적 사실담|꿈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채록/수집 상황]
『얼』[진해 문화원, 1983]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지금 제황산(帝皇山)의 옛 이름은 부엉등 또는 부엉산이라 했다. 이 산의 북방에서 제황이 탄생한다는 속설이 전하여지면서 제황산(帝皇山)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산 정상에는 진해탑이 세워져 있지만 진해탑을 세우기 전에는 일제의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露日戰爭 戰勝記念塔)이 서 있었다.
이 탑을 세울 때의 일이었다. 부엉산 아래에는 묘법사(妙法寺), 선광사(光寺), 안국사(安國寺) 등의 일본 사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묘법사만 남아 있다] 탑을 세우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던 어느 날 묘법사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무도한 일본 놈들이 나의 두상을 깎아 버려서 이렇게 피를 흘리고 있다. 너는 도를 닦는 승려이니 일본 해군 사령관에게 공사를 즉시 중지하도록 하고 본래대로 산봉우리를 복구할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무례한 짓을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라. 만약 내 말을 그대로 이행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를 것이니 잊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묘법사 주지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일본 해군 진해요항부의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으나 듣지를 않았다. 그러자 진창선(鎭昌線) 철도 개설 기념회가 서기 1927년 4월에 열렸는데 이를 관람하기 위하여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배를 타고 현동부두로 입항하려다가 전복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그 후에 부엉산 산신령은 묘법사 주지에게 다시 나타나서 “내가 너에게 부탁을 하여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아 내 영험을 바다에서 보였는데도 믿지 않으니 다시 경고한다. 공사를 즉각 중지하고 본래대로 다듬어 놓지 않으면 큰 변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묘법사 주지는 또 다시 해군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산에서 변이 생겼다. 케이블카 5대에 석재를 실어 산정으로 끌어올리다가 와이어 로프가 끊어지면서 케이블카가 산산조각이 났는데 일을 하던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치지 않고 일본인들만 사상자를 내었다. 그러나 공사는 계속 되어 서기 1929년 기념탑을 준공하였다.
[모티프 분석]
「부엉산 산신령의 분노」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역사적 사실담을 기반으로 한다. 즉 일본 해군이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을 건립하는 과정에 일어난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환을 가져오는 꿈의 모티프는 재앙을 예고하는 장치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남의 나라 땅과 사람을 핍박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진해 지역의 ‘항일 의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