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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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남식 |
창간 시기/일시 | 1996년 1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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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2002년 11월 25일 |
제작|간행처 | 동양 문화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211-10 |
성격 | 향토 연구지 |
관련 인물 | 황정덕|이용욱|최두환 |
창간인 | 황정덕 |
발행인 | 김승규 |
판형 | 4×6배판[188×257㎜] |
총호수 | 4호[2002년 12월 현재] |
[정의]
경상남도 진해시 진해 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향토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발간된 진해 향토 연구지.
[개설]
『곰메 문화』는 향토애와 향토 문화 의식을 고취하여 시민 의식의 개혁을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지정·비지정 문화재의 연구와 보존을 위한 활동과 국내외 향토 문화의 교류를 위한 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곰메’의 뜻은 진해의 주산 웅산(熊山)을 말한다.
[창간 경위]
진해라는 행정 지명은 진동·진전·진북 지방의 옛 행정 지명인 진해현의 이름을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일제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진해를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사용하려는 뜻과 연관이 있다. 즉 누를 진(鎭)자와 바다 해(海)를 써서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인데 아시아의 제해권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 향토 문화지의 이름을 ‘진해 문화’라고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전통을 찾아 출발하려는 뜻이 『곰메 문화』의 의지인 것이다.
[형태]
4×6배판 컬러 화보이고 창간호의 ‘곰메 문화’ 한글 제자는 이수해가 썼고 제4호부터 서예가 승윤상의 것으로 바뀌었다. 발행면수는 300면 내외이다.
[구성/내용]
편집은 주로 특집 체제로 꾸며졌고, 관통하는 주제는 임진왜란과 연관되는 것들이 많다. 이충무공의 재발견, 웅천 도요지가 일본에 미친 영향이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그 외 시굴 보고, 회원 논단, 향토 문단이 게재되었고 진해 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의 연혁과 정관 등이 권말에 실렸다.
[변천과 현황]
1996년에 창간호가 나왔다. 펴낸이는 황정덕, 엮은이는 이용욱, 김홍식, 최두환, 나규영, 김만수, 진말득이다. 1998년 제2호, 1999년 제3호가 나왔고 2002년 제4호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았다. 제4호의 엮은이로는 황정덕, 이용욱, 최두환, 김봉우이다.
[의의와 평가]
1985년 진해 향토 문화 연구소가 개설된 이래 향토 문화 사업은 10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5년 진해 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부설 진해 향토 문화연구소]의 창립으로 내 고장 총서가 매년 발간되었고, 충무공 정신 선양 및 내 고장 사랑 문화 강연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이 연구회의 역할에 힘입어 1997년 진해 문화 대학이 개설되어 향토 문화 사업의 대중화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2002년부터 『곰메 문화』가 4집으로 종간되면서 이후 활동은 이 연구회를 이끈 황정덕 개인의 저술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