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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일(知一) 선생의 귀향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B020207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현

충과 효를 마을의 지표로 삼고 있는 마을답게 석산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 홀로 남은 부친을 곁에서 모시기 위해 귀향하여 정성을 다해 간병한 지일 선생의 효행이 마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일 김상균 선생은 석산리 480-1번지에서 아버지 김희룡과 어머니 이점희 사이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석산마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부산교육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2005년 2월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부산에서 41년간 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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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옹

지일 선생은 장남으로서 부모 봉양에 마음을 썼다. 부산에서 생활하면서도 매달 부모님이 계신 석산마을을 찾았으며, 2003년 5월 20일 모친이 사망한 후에는 격주 또는 주 1회 고향을 방문하였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부친이 건강이 나빠져 거동이 어려웠는데, 이발관에 출입하기도 힘들어지자 지일 선생은 마산에서 이발 도구를 직접 구입하여 이발과 면도, 목욕을 시켜드리고, 하루에도 수차례씩 용변을 도와야 했다.

2005년 2월 28일 지일 선생은 부산고등학교에서 41년간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 후 고향으로 귀향하였다.

귀향의 첫 번째 목적은 홀로 남으신 부친을 모시기 위해서였다. 지일 선생은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홀아버님을 모시기를 내 몸 돌보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리고 부친을 모시는 동안은 힘들기는커녕 마음에서 기쁨이 넘쳤다고 한다.

지일 선생의 부친은 2008년 음력 5월 20일 모친 기제를 모시고 난 후 말을 못하시고 눈만 멀뚱멀뚱 하더니 3일 후인 2008년 5월 23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지일 선생은 “옛말에 ‘부부가 같은 달에 돌아가시면 천생연분’이다라고 하였는데 3일 차이로 돌아가셨으니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모시고 가셨구나.”라고 생각하신다고.

지일 선생은 부친을 마산시 진동면에 위치한 시립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였다. 그때 화구에서 일하는 분이 가르쳐 준 대로 “아버님, 불났습니다. 빨리 나오세요.”라고 마지막으로 세 번 외치면서 ‘이젠 영영 뵐 수 없구나. 이 길이 마지막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대성통곡을 하였다고. 지일 선생은 부친께서 90세까지는 생존하실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바깥구경(관광)이라도 한 번 더 시켜드릴 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여전히 남는다고 회고한다.

[정보제공자]

김상균(남, 1941년생, 석산마을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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