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E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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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용 |
예부터 사람들은 고을마다에 있는 중심산에는 신이 자리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라와 각 고을에서는 중심산에 있는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외감마을을 비롯해서 북면 인근의 중심산은 용지봉이다.
용지봉은 북면뿐만 아니라 창원시 일원과 함안군 칠원면의 중심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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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에서 본 용지봉 능선
이곳에서 어떠한 제의가 있었는지 기록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면과 창원시 일원, 칠원면에서 공동으로 기우제를 지냈던 것을 보아 고을의 중심산이 분명하다. 용지봉은 북면 인근의 중심산이라 할 만한 산세도 갖추었다. 용지봉은 남낙정간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마산의 명산 두척산에 이어져 지리산으로 내닫고, 동으로는 천주산과 옛 창원의 진산인 첨산에 이어져 김해 땅에 이르러 낙동강에 닿는다.
한편, 용지봉에 이은 첨산에서 갈라진 한줄기 산맥은 창원의 곡창지 동읍과 대산면의 배산이 되며, 신라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불도를 이룬 백월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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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바라본 천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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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봉에서 본 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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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봉에서 본 마산바다
1966년경 극심한 가뭄으로 북면, 창원, 함안 칠원의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내는 날, 햇볕이 내리쬐는 날임에도 집집마다 수십 개의 병에 물을 가득 담고 솔잎으로 막은 후 마당에 줄을 쳐 거꾸로 매달아 마치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처럼 모방제의를 행했다. 그리고 중심산인 용지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정제한 옷차림에도 비오는 날처럼 도롱이를 입었는데 이 또한 기우제의 모방제의였다. 그때 여러 고을에서 온 사람들로 용지봉 일원을 메웠고, 북쪽 구릉지에 제단을 마련하여 기우제를 올렸다. 그리고 기우제를 지낸 다음다음 날 비가 참으로 많이 왔다. 그 때 기우제에 모였던 정성이 비로 내린 것이라 지금에도 필자는 그리 기억한다.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겨 온 외감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달집을 세우고 한해의 소원을 빌며 달집을 태운다. 예전에는 가장 중요한 달집은 천주산과 농암산 정상에 세웠다.
높고 신성한 공간에서 달맞이를 하려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주로 젊은 장정들이 마을 행사로 치루었는데, 보름달이 떠 산마루 달집에 불이 붙으면 장정들의 우렁찬 함성이 산 아래로 퍼지고 저마다의 소망은 불길 따라 달을 향해 올랐다.
이어 고을 어귀 낮은 달집에서도 보름달을 맞아들여 달집을 태운다. 가족의 무탈함을 기원하고 풍년을 염원하는 소박한 소원이 할머니, 어머니들의 두 손에 모아져 달을 향했다. 그리고 개구쟁이들의 놀잇감인 연도 함께 태우고 쥐불로 논두렁을 태웠다. 이때 어르신들은 선명한 달을 보고 한 해의 풍년을 점쳤다. 이제는 마을 앞에서만 달맞이 달집을 태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맘때는 지신밟기 풍물 소리가 여러 날 온 동네에 퍼졌다. 집집의 안방과 부엌 등 여러 곳의 신을 풍물로 밟으면 집주인은 그 보답으로 마당에 막걸리를 내놓고 이어 한바탕 온 동네의 놀이마당이 되었다. 놀이마당에서는 신이 난 포수와 할멈의 희롱에 온 동네가 웃었으며, 그렇게 서로의 정을 나누었다.
음력 2월 초하루에는, 신에게 바람을 올리는 제의가 집집의 아낙들에 의해 고을 주변 인적 드문 곳에서 행해졌다. 풍신을 달래어 한해 풍년을 기원했던 전통 신앙이다. 이러한 제의를 기피하면 풍년이 들지 않는다는 책임감 때문에 집집마다 바람을 올렸다. 그 소박한 제단에 과일과 함께 올려진 동전 몇 닢은 용돈을 모르던 개구쟁이들의 반가운 소득이 되기도 했다.
[정보제공자]
이성대(남, 1953년생, 외감마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