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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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谷里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리아 |
의례 장소 | 상곡 마을 동신 제당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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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음력 12월 25일 |
신당/신체 | 회화나무[상곡리 아버지 나무]|느티나무[상곡리 아들 나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상곡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상곡 마을 동제는 매년 1월 5일 마을의 신목인 ‘상곡리 아버지 나무’와 ‘상곡리 아들 나무’에서 지냈으나 시기와 제관 선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음력 12월 25일로 제일(祭日)을 바꾸어 아버지 나무에서만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내서읍 상곡리 상곡 마을은 1995년 1월 창원에서 마산시 회원구로 편입되었다. 2010년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속한다. 동신 제당에서 매년 마을의 안위와 마을 사람들의 평안무사를 기원하며 동제를 올려온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상곡 마을 동신 제당은 원풍대(願豊臺)에 있으며, 제당 내부에는 ‘동신 제단(洞神祭壇)’이라 새긴 높이 1m 정도의 돌이 있다. 신목은 높이가 약 20m이고 둘레는 2m인 ‘상곡리 아버지 나무’로 불리는 회화나무와 ‘상곡리 아들 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이다.
[절차]
제일이 다가오면 연초에 마을 회의를 소집하여 제관을 선정하는데, 시기와 제관 선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매년 음력 1월 5일에 지내던 것을 음력 12월 25일로 변경했다. 제의 장소도 ‘상곡리 아버지 나무’인 회화나무에서만 지내고 있다.
[축문]
제관이 첫 잔을 올린 후 마을의 원로나 이장이 축문을 낭독하는데 특별한 격식이 없이 당해 연도의 주민들 관심사와 마을 주민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한다.
[부대 행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여 음식을 나눔으로써 일체감을 가지고 지역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시키며 노동의 힘든 생활에 활력을 준다.
[현황]
상곡 마을에는 원풍대(願豊臺)에 있는 수호 신목인 ‘상곡리 아버지 나무’와 ‘상곡리 아들 나무’에서 마을의 안위와 마을 사람들의 평안무사를 기원하며 동신제를 지냈다. 아버지 나무는 400년 수령의 회화나무이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화(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중국 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르게 되었다.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듯이, 상곡 마을 신목인 회화나무도 마을 사람들의 벼슬 운을 터 준다는 믿음으로 수백여 년의 세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회화나무 바로 옆에는 ‘동신제당’이 있고 제당 내부에는 ‘동신제단(洞神祭壇)’이라 새긴 높이 1m 정도의 돌이 있다.
아들나무는 서대(西臺) 옆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이곳에는 2단의 기단을 둥근 형태로 쌓고 그 위에 높이 75㎝의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이 있다. 비갈(碑碣)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앞면에는 ‘서대(西臺)’라 새겨져 있다. 서대는 1937년에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여 조선 후기 인물인 이원순(李元淳)의 아들인 이상화(李相華)가 세웠으며, 비석이 있는 자리는 이원순이 1918년 고종이 승하했을 때 곡을 하였던 곳이다.
제일(祭日)은 원래 매년 음력 1월 5일이었으나 시기와 제관 선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매년 음력 12월 25일로 변경했다. 제의 장소도 ‘상곡리 아버지 나무’인 회화나무에서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