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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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의 전통 건축 및 근대 건축, 현대 건축. 건축은 구조적으로 안전하면서도 공간 형태면에서는 예술적 감흥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견실한 구조와 편리한 기능, 예술적인 미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창원 지역은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업 단지가 조성되고, 1980년대 초 경상남도 도청이 이전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도청 이전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택지 분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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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수단 및 도로와 철도 등의 관련 시설. 창원 지역에서의 교통은 전통적으로 물길을 많이 이용해 왔다. 그것은 창원 지역이 처한 지리적 배경에 기인한다. 물길의 이용은 멀리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창원 지역 곳곳에 분포하는 조개더미와 거기서 출토된 유물이 그 증거이다. 특히 성산 패총과 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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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항쟁. 1899년 개항 당시 마산포에는 4곳의 선창[오산선창, 어선창, 백일세선창, 서성선창]을 중심으로 상가와 민가들이 모여 있는 정도였고, 선창의 자연조건에 따라 장소가 협소하고 수심도 얕아 상품의 하역과 선적에 불편함이 많았다.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동성리에 거주하는 김경덕(金敬悳)이 서성리에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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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칠원현의 귀산포(龜山浦)에 설치된 진(鎭). 조선 시대에도 군현의 읍명은 시기에 따라 통합과 이속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귀산(龜山)은 칠원현의 남쪽으로 70리에 있었는데 본래는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다. 고려 때 현으로 승격하여 귀산현[구산현]이라 칭하였다가 웅신현(熊神縣)에 예속시켰다. 후에 금주(金州)에 예속시켰다가 공양왕 때 칠원에 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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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강이나 내, 좁은 바닷목에 배가 건너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나루란 말의 기원은 ‘나라(國)’에서 나왔거나 ‘나르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나라의 옛말은 ‘라라’이고, 이는 ‘나루’를 가리키던 명사로 곧 나라[국가]를 의미한다고 했다. 고대 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인근 부족 또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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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남성동이라는 지명은 환주산성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663년(현종 4) 대동법 시행에 따라 현재 남성동 자리에 조창(漕倉)을 두면서 마산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오늘날 마산 지역의 기반이 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남성동은 합포현에서 조선 시대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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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행정동. 동서동은 『경상도 읍지』에서 서성리로 확인된다. 서성리는 고려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주산성과 공간적 상관성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며 환주산성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생성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합포현에서 조선 태종 때에 창원부로 편입되었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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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이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 미친 영향. 러시아와 일본은 19세기 말에 서구 열강의 압력을 받으며 제국주의 국가로 변하고 있었다. 일본은 1894년에서 1895년에 걸친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국과 만주 지역에 대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곧 러시아의 견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에게 할양된 랴오뚱[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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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마산포의 선창(船艙) 및 동·서 굴강 터. 조선 시대 마산포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매립되기 전까지 서성 선창·백일세 선창·어선창·오산 선창 등 네 개의 선창과 동굴강 및 서굴강이 있었다. 마산포가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1425년(세종 7)에 완성된 『경상도 지리지』로, “우도(右道) 내상(內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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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창원부에 속한 조창 터. 마산 남성동 조창 터는 조선 시대인 1760년(영조 36)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의 계에 따라 대동미의 징수를 위해 창원부에 둔 조창의 터이다. 『경상도 읍지』 「창원부 읍지」 창고 관련 기록에 따르면 “해창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조창은 해창 곁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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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마산 개항 이후 일본인이 마산에 세운 사립 일어 학교에 대한 마산항민들의 저항 운동. 1899년 마산항이 개항되면서 일본과 러시아는 마산항을 중심으로 토지를 매수하기 시작하였고, 마산포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토지매수 뿐만 아니라 구마산 시장권을 약탈하려고 하였다. 이에 마산항민들은 토지 불매 운동, 상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대일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인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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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시 산호동에 있었던 민간 종합 경제 단체. 상공 회의소는 상공업의 개선과 발전,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하고, 국제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상공 회의소법」에 의하여 설립된 공익 법인으로 민간 종합 경제 단체이다. 또한, 상공 회의소는 자유주의 국가는 물론 공산주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국가에 존재하고 있으며, 전 세계 132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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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5월 마산포의 객주들이 설립한 근대적 상업 단체. 1899년 마산항의 개항 이후 식민 자본으로부터 마산포의 상권을 보호하기 설립하였다. 1900년 5월 이규철(李圭哲)을 비롯한 마산포 시장 객주를 중심으로 마산 상호회를 조직하였다. 1908년 5월 30일 신마산 일본인 조차지에서 일본 상인 30명이 마산 상업 회의소를 설립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산 상호회는 1908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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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항 개항기인 1906년 6월 마산 창포동 3가에 설립된 어류 위탁 판매 회사. 마산항 개항기에 일본인이 자본금 2만 원으로 설립한 근대적 주식회사로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영업하였다. 1년간 양륙(揚陸)고는 35만 6220㎏[94,992관]으로 부내 어업 종사자는 122명이었다. 거래는 어업자 이외 다른 사람이 시장에 반입, 경매로서 인수하였다. 중매인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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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수산물 어시장. 1760년(영조 36) 조창이 설치[현 제일 은행 마산 지점]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 형성 초기에는 5일장으로 운영되었다. 마산창이 설치된 이후 창원 부사가 조창에 관원과 조군을 배치하고 선창 주변에 마을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시장[마산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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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미더덕·어시장·오동동 ……. 잘 알려진 마산의 명물들이다. 마산의 명물 중에서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제대로 모른다. 통합 창원시가 마산 도심 재생 사업을 하면서 골목을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스토리가 약하다. 스토리가 없는 게 아니다. 마산 어시장과 오동동·창동 골목에는 마산의 역사와 정취를 고스란히 전해 주는 테마가 있다. 산업과 상업의 유형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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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와 마산시 사이의 바다가 육지쪽으로 파고들어와 있는 지형. 마산(馬山)이란 지명이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경상도지리지』로, 마산포(馬山浦)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 중요 문헌에도 빠짐없이 나오지만 조선시대 당시 마산포는 창원도호부 서쪽 20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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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해방 전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조선 시대의 마산은 창원부 혹은 창원군에 속한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1760년(영조 36)에 마산포에 조창(漕倉)이 설치되고 세곡(稅穀) 운송에 따른 상품 유통량이 늘어나면서 마산포는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김해의 칠성포(七星浦)와 더불어 경상도의 유력한 포구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함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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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민간신앙이면서 민속축제. 마산 성신 대제는 창원시 성신 대제 보존회에서 보존 계승한 전통 축제이다. 현재의 성신대제는 수협중매인협회를 중심으로 1905년부터 현재까지 유지된 ‘성신위’ 위패와, 음력 3월 28일의 제의 전통을 근거로 구성된 것이다. 현재는 어시장축제와 시민을 위한 공연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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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공동 우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는 예전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글은 마산의 물맛과 술맛 그리고 사람의 성정과 관련된 글이며 마산의 이름난 공동 우물 장소가 명기되어 있다. 마산은 옛날부터 산수가 좋아 술맛을 가로되 제호미(醍醐味)라는 정평이 있다. 이것은 오로지 양조장 경영주의 인격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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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형성된 경상도의 최대 장시. 『만기요람』에는 마산장을 경상도의 최대 장시(場市)로 기록했다. 1899년에 마산포가 개항장으로 지정되자 기존 시가지[舊馬山] 남쪽 신마산(新馬山) 지역에 각국의 영사관 부지와 공동 조계(租界) 등이 들어서 도시가 급속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창원 감리서가 폐지되고 마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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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마산포의 개항에 따라 무역 등에 종사하는 여러 나라 외국인들이 거주·영업할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1876년 일본과 수호조규를 체결하면서 문호를 개방한 한국은 1890년대에 들어와 열강의 세력 균형을 위해 교류를 확대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무역 확대에 따른 이익을 노린 외국의 요청이 맞물리면서 개항장·개시장(開市場)을 확대해 나갔다. 1897년에 증남포와 목포를 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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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창원의 마산포를 외국인에게 개방하여 거주와 무역 등을 가능하게 한 사건. 1876년 일본과 수호 조규를 체결하고, 1880년대에 들어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잇따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호를 열게 된다. 문호의 개방은 1876년 동래의 부산포, 1880년 덕원의 원산포, 1883년 인천의 제물포 등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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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마산 지역의 정기 장시인 마산포 구강장을 일본인 거류지로 옮기려는 일본 영사관과 일본 상인들의 시도를 막아내어 한국 상인들의 상권을 지킨 운동. 1899년 마산포 개항 당시 일본 상인들은 몇 사람 되지 않은데다가 자본도 영세하여 대부분 단순 잡화상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산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일본 영사관은 일본 상인들의 상권 확대를 돕기 위해 전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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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가 외교부와 해군성 등의 주도 하에 마산만 지역에 대한 정세를 조사·보고한 극비 문서를 모은 문서철. 1899년 조선은 마산포를 비롯해 세 곳에 개항장을 설치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일본은 러시아와 개항장으로 지정된 마산 일대, 즉 마산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이곳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천혜의 요항이었던 반면, 일본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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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본격적으로 항포구의 역할을 수행한 마산포에 개설된 장시(場市). 마산포(馬山浦)는 고려 초기부터 전국 12조창(漕倉)의 하나인 석두창(石頭倉)이 설치되어 조세의 해상 운송을 담당하였으나 왜구의 침탈과 조운(漕運)의 중단으로 역할이 쇠퇴하였다. 그 후 항포구로서의 기능은 조선 후기인 1760년(영조 36) 경상도의 세곡을 운송하기 위한 조창이 마산에 설치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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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인 마산포 부근의 월영리, 자복포 일대에 일본의 단독 조계 설정을 허용하는 조약. 1899년 마산포의 개항을 전후하여 러시아는 남해안의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마산포에 동양함대를 위한 조차지를 설정하기 위해, 일본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 결과 마산포에는 다른 개항장에 없는 러시아와 일본의 단독 조계지가 설정되기도 했다. 먼저 러시아는 마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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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군용 철도로 사용하기 위해 1905년에 완공한 삼랑진에서 마산포를 잇는 철도 노선. 일본은 1904년 2월 대규모의 군대를 한반도에 진주시켜 주요 지역을 사실상 강점한 상태에서 뤼순[旅順]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이어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한국을 일본의 동맹국과 같은 지위로 만드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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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마산은 고사에 의하면 삼한 시대에는 변한의 일부라는 설이 있으나 삼한에 속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신라 35대 경덕왕 이전에는 마산항을 골포(骨浦), 마산을 골포현(骨浦縣)이라 불러 골포현(屈自郡)에 영속시켰는데 골포현 당시의 성지는 지금도 시내 환주산[추산동 정수장 부근]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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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동에 있는 고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동 남서쪽에 있는 고개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경계에 있는 대곡산 쌀재 고개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매년 음력 8월 17일 경 각종 전통 놀이가 어우러지는 ‘만날제’가 열린다. ‘만날 고개’라는 지명은 이 고개에서 전해 내려오는 모녀간의 상봉 전설을 바탕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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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과 월영동의 경계와 내서면 감천곡으로 통하는 고개에 얽힌 이야기.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산160번지 예곡동과 월영동의 경계에 내서면 감천곡으로 통하는 고갯길을 ‘만날 고개’라 하는데 차량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 고개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만날 고개’로 부르게 된 사연을 간직한 고개로 실제로 음력 8월 열 이렛날 추석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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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의 만날 고개와 만날 근린공원 일대에서 매년 추석 연휴에 개최하는 지역 민속 축제. 만날 고개는 마산합포구 월영동과 예곡동 사이에 있는 높이 204m의 고개이다. 만날 고개는 마산포에서 감천을 거쳐 함안으로 이어지던 오래된 교통로로서, 이 길을 통해 마산포의 수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이 왕래하였다. 만날 고개 일대에는 매년 음력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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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음악·미술·연극·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1980년 창원이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창원 지역 예술은 100여 년 전 개항한 마산시와 동일 생활권에 놓여 있어 모두 마산 예술로 설명되었다. 또한 1974년부터 국책 사업으로 추진된 기계 공업 단지 건설이라는 대명제 앞에 공장 용지 조성, 공장 유치와 건설, 배후 도시 건설 등으로 주민을 이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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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은 한국사 개설서에도 이름이 나올 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세종 때 압록강 상류에 침입한 오랑캐의 추장인 이만주를 토벌하고 성을 쌓아 자성군을 두어 4군 설치의 기초를 만든 인물 정도로만 짧게 설명되고 있다. 최근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윤덕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최윤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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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대외 교역과 문화 교류. 경상남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2010년 7월 1일부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어 창원시가 되었다. 행정 구역 변천에 따라 통합과 분리 과정을 거듭해 왔지만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역사 발전 과정으로 볼 때 창원 지역은 바다와 강을 통한 교역과 문화 교류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고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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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마산포의 개항과 함께 일시적으로 창원에 설치되었던 일본 영사관의 분관. 영사관(領事館)은 외국에 주재하면서 자국민을 보호·감독하고 통상을 촉진하는 것을 업무로 하는 외교기관이다. 한국이 1876년 한일수호조규를 맺어 문호를 개방하기로 하고 같은 해 동래의 부산포를 제일 먼저 개항함에 따라 콘도 마스키[近藤眞鋤]가 부산관리관(釜山管理官)으로 파견되어 영사업무를 수행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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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행정동. 산호동의 ‘산호’라는 지명은 뒤에는 용마산, 앞에는 합호의 바다가 있다는 생성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구 총수』에 나오는 마산포가 지금의 산호동을 이룬 옛 마을로 추정된다. 포구인 마산포와 조세 수납처인 마산창이 『경상도 지리지』에서도 이 일대로 확인된다. 마산이라는 지명은 중심산을 뜻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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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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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가톨릭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교회. 천주교 마산 교구가 1997년 8월 20일자 교구 시행 공문을 통하여 교구를 4개 마산 지구, 창원 지구, 진주 지구, 통영 지구로 분할하였다. 이에 따라 통합 창원시에 위치하고 있는 본당은 마산 지구[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1지역의 양덕동 성당, 구암동 성당, 산호동 성당, 삼계 성당, 석전동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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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성신(星神)을 위해 지내는 제의. 성신제는 토속 신앙 형태로 우리나라 남쪽 해안 지방의 여러 포구에서 행해지는 별신제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별신제는 일명 ‘별신굿’이라고도 하는데 남해안 일대에서 행해지는 별신제는 3년에 한번 씩 지내는 3년제와 10년에 지내는 10년제가 일반적이다. 경상남도 마산 지역 성신제의 기원은 그 확실한 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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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은 점차로 심화되어 갔고, 우리의 국운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의 순간으로 내닫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하루 빨리 이 땅에 신교육을 통하여 몽매한 백성을 개화시켜 우리의 근대화를 실현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일제의 세력에 항거하면서 민족의 살 길을 찾는 것이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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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의 오서 고개에 있는 돌무더기. 오서고개 서낭당은 경상남도 고성군과 창원시 진동면을 이어주는 경계인 오서 고개에 위치한 돌무더기로 민간 신앙 유적이다. 옛날 고성현에서 배둔역촌을 거쳐 진해현과 마산포로 가기 위해서는 이 오서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경계 지점에 1기의 돌무더기 서낭당이 있었으며, 그 아래 50여 미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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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개항장인 마산포 부근 율구미 일대 30만 평에 러시아의 단독 조계를 설정하도록 허용하는 계약. 1899년 마산포의 개항을 전후하여 러시아는 남해안의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마산포에 동양 함대를 위한 조차지를 설정하기 위해, 일본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 결과 마산포에는 다른 개항장에 없는 러시아와 일본의 단독 조계지가 설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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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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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마산만을 매립한 일. 개항을 계기로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방대한 규모의 마산만 매립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에 의한 마산만의 매립은 도시의 전체적인 균형과 발전을 위해 거시적으로 일관되게 계획되어 시행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필요 및 투기성 경제 활동의 수단으로 시행된 매립이었다. 마산 도시가 끼고 있던 해안의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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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마산포의 개항을 전후하여 단독 조계를 설정하기 위해 마산 자복포 일대의 토지를 불법적으로 사들이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요구를 거부한 사건. 1899년 마산포의 개항을 전후하여 러시아는 남해안의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마산포에 동양함대를 위한 조차지를 설정하기 위해, 일본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갈등을 빚고 있었다. 먼저 러시아는 마산포 개항 몇 개월 전부터 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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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남도 마산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조직한 단체. 1899년 마산포 개항 당시 마산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2, 3명에 불과하였지만, 각국 공동 조계 경매 이래 이주자가 점차 증가하여 다음 해인 1900년 봄에는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마산 거주 일본인들은 야마타[山田敎文]를 총대(總代)로 추대하고 평의원 3명을 선출하여 ‘마산 일본인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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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에 있는 산. ‘제비산’ 지명은 제비가 많이 모여드는 산이라 하여 ‘제비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비산의 또 다른 이름인 ‘노비산’의 지명은 말을 끄는 노비에 비유하여 ‘노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비산은 용마산과 더불어 창원시 마산 지역의 중앙에 동·서로 뻗어 있는 동산이다. 동쪽으로는 나지막한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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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포(薺浦)에 설치되었던 군사 주둔 지역. 제포(薺浦)에는 조선 초기에 우수영이 설치되었다가 얼마 후 경상우도수군첨절제사영(慶尙右道水軍僉節制使營)이 설치되었다. 제포에 설치된 진(鎭)은 군사상 방어의 필요성에서 지방의 요충지에 설치한 군사 주둔 지역으로 조선 후기에는 만호(萬戶)가 지휘하는 진해만의 해상 방어 기지가 되었다.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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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일대에 있는 수산물 시장. 마산 어시장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남성동·동성동·신포동에 걸쳐 있다. 어시장은 좁게 본다면 수산물을 팔고 사는 상행위를 하는 장소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위탁 판매와 경매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포함한다. 마산 어시장은 동서 방향으로는 옛 중앙 청과 시장에서 오동동 복골목까지이며, 남북 방향은 해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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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세곡 보관 창고. 조선 건국 이후 전국에 있는 해운 교통의 요지에는 세곡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조창(漕倉)이 설치되었다. 조창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금 보관 창고이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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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이 한반도 주변 해역을 방어하기 위해 1910년부터 1922년까지 진해에 건설한 군항.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대규모의 군대를 한국에 진주시켰다. 창원·마산·거제 등 진해만 일대 주요 지역을 사실상 강점하고 여기에 해군 방비대 등 임시 군사 기지를 설치하여 군사 훈련을 거듭한 끝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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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도호부 관내에 설치되었던 물품 저장 또는 보관 시설. 창고는 창원 도호부가 행정이나 군사 업무의 수행 과정에 필요한 곡물 및 무기류 등의 보관과 관리를 위해 관내에 설치·운영한 시설이다. 『창원 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당시 창원 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가량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창원 도호부 관내의 창고들을 설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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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개항장·개시장에 설치되어 행정과 대외통상 업무를 보던 기관.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79), 인천(1882)을 비롯해 주요 항구가 개방되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교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거류지 관계 사무와 통상사무를 전담하고 처리할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감리서는 초기에 해당 지역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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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에 있는 민간 종합 경제 단체. 상공업의 종합적인 개선 발전과 국민 경제 그리고 지역 사회의 균형 성장을 도모함은 물론 상공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대변 기관으로서 다양하고 광범위한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창원 상공 회의소는 1900년 5월 마산포 객주들을 주축으로 자율적으로 조직된 ‘마산 상호회’를 모태로 한다.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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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 있는 로마네스크식과 르네상스식의 건축 양식을 절충하여 지은 석조 성당. 프랑스 신부 에밀리오[엄택기]가 진주에 있던 본당을 마산포로 옮긴 것이 성 요셉 성당의 토대가 되었다. 1898년에 개항한 마산포는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었고 외국인에 대한 반감도 적어 천주교 선교에 이점이 많았다. 에밀리오 신부는 임시로 조선인들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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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부터 1906년 사이 창원감리서에서 보고한 공문과 외부의 훈령을 묶은 공문서철. 「창원항보첩」은 1899년(광무 3) 5월부터 1906년 1월 사이에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에서 상급기관인 외부로 보낸 보고서와 외부에서 창원감리서에 내린 훈령을 편집한 공문서철(公文書綴)이다. 모두 5책으로 되어 있다. 국한문 혼용의 필사본 5책으로 묶여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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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부터 1908년 사이 창원감리서와 창원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와 의정부 훈령을 묶은 공문서철. 「창원항안」은 1906년(광무 10) 2월부터 1908년 1월 사이에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와 창원부(昌原府)에서 상급기관인 의정부로 보낸 보고서와 의정부에서 창원감리서와 창원부에 내린 훈령을 함께 모은 국한문혼용체의 공문서철(公文書綴)이다. 국한문 혼용의 필사본 1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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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창원성에서 조선 관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창원은 왜적 무리가 진주와 전라도 지역을 공략하는 데 있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요충지였다. 즉 부산에 상륙한 왜적은 3로(路)로 나누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중로(中路),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동로(東路),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서로(西路)로 진격해 왔다. 창원 지역을 내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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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합 창원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종교. 현재 마산 교구가 관할하고 있는 경상남도 일원에 교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1827년 2월[음력] 정해년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보고 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피난 교우들이 한편으로 백운산, 덕유산 자락을 따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낙동강을 따라 경상남도 전역으로 내려와 따뜻하고 일거리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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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 있는 고개.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서 평성리, 중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콘티 고개[末峴]’라는 지명은 “중심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콘티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콘티’는 곤치(昆峙) 고개라고 기록되기도 하는데, 중심 고개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곤(昆)의 뜻이 ‘맏’인데 ‘맏’은 중심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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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동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행정동. 합포동은 합포현 지역으로 앞에 합호의 바다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되며 산호라고도 하였다. 합포동에 속하는 산호동이라는 지명 또한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포동에 속한 상남동은 용마산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생성 의미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합포동은 산호동과 상남동의 지역이 행정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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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거행하는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고대 축제. 1. 조창의 설치와 성신 대제 성신 대제는 포(浦)를 거점으로 설치된 조창과 관련된 민속 신앙이다. 조창은 1663년(현종 4) 산호리의 석두창에서 오산진(午山津) 구역으로 옮겨갔다. 오산진의 조창은 갈대밭에 설치된 노적창이었다. 이 조창은 1760년(영조 36)에 창고 시설을 온전히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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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은 고대로부터 창원·김해 지역과 해외를 연결하는 접촉 통로 역할을 하였다. 가락국 허황후가 탔던 배가 진해구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처음으로 침략해왔던 지역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진해구 해안에 수군 관방과 왜관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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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마산 공립 보통 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에서 제작한 마산의 도시 지도.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가 제작된 1932년은 한국인들이 거주한 마산포[원마산]와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이 도시 연담화(都市連擔化)[Conurbation: 중소 도시 시가지가 서로 붙어 거대 도시를 이룸]되던 시기다. 1920년대 벽두에 조선 회사령이 철폐되자 일본인들은 기업을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