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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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안부. 우리나라 최고의 고개는 함경산맥의 금패령으로 1,676m이다. 고개에 대한 한자 이름은 여러 가지인데, 영(嶺)은 대관령이나 진부령 같은 높은 큰 고개에 사용되었으며, 그 외에 아현·대현과 같은 현(峴)이나 팔량치·우금치처럼 치(峙)를 쓰기도 한다. 창원 지역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마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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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전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廣輿圖)』에 수록된 경상도 창원부의 지도. 『광여도』는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여지도』,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승』 등과 함께 조선 시대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로서 지도와 함께 고을의 현황을 덧붙인 자료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유용한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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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수단 및 도로와 철도 등의 관련 시설. 창원 지역에서의 교통은 전통적으로 물길을 많이 이용해 왔다. 그것은 창원 지역이 처한 지리적 배경에 기인한다. 물길의 이용은 멀리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창원 지역 곳곳에 분포하는 조개더미와 거기서 출토된 유물이 그 증거이다. 특히 성산 패총과 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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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시가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시는 조선 시대에 웅천 혹은 웅신 등으로 불렸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군항 및 시가지가 새롭게 건설되었고 1912년에 기존의 웅중면과 웅서면을 포함하는 진해면이 되었다가, 1931년 진해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방 이후인 1955년 9월 1일에 진해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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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지 경관. 창원시 진해구는 해안에서 북쪽으로 산지를 바라보면 좌측으로 산성산·장복산·웅산·시루봉·천자봉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병풍처럼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다. 진해구를 둘러싼 산지 경관은 각종 지도 자료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 가능하며, 특히 항공 사진이나 인공 위성 영상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산지 경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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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5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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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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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5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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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그리고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남면의 다섯 개 운 중의 하나가 도하이운(道下二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남면 도하이운에는 5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도하(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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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남면(南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을 두어, 남면(南面) 산하에는 모두 5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다.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당시 도하일운(道下一運)은 남면 소속의 5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4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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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남포리에 있는 개. 남포는 구산면 남포리에 있는 개이다. 『경상도 지리지』에 여포(餘浦)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여포 봉화가 북쪽으로 완포현(莞浦懸) 고산 봉화를 바라보는데 거리가 수로로 30리라고 하였다. 『세종 실록』에는 여포와 함께 여음포(餘音浦)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창원 도호부』에 여포에 봉수가 있는데 북으로 완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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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었던 내이포[제포] 수군을 관할하던 종 4품의 무관. 웅천의 내이포진은 왜구 침략의 요충지인 웅천현 남쪽 5리 지점에 설치되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가 1인 배치되어 조선 시대 수군 진을 관할하면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왜구들을 방비하였다.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왜구의 노략질은 고려 중기 이후에 극성에 이르러 1390년(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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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에 있는 고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김해시의 경계에 있는 굴암산 남동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의 고개로 웅동에서 부산광역시 지사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너더리 고개’라는 지명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가 김해로 가면서 지사천을 건널 때 ‘널다리’를 놓고 건너서 ‘널다리’라고 부르던 땅 이름이 잘못 전하여 ‘너더리’가 되었다는 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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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 앞에 있는 개.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 웅천현에서 서쪽으로 16리에 있다고 하였다. 덕산포의 덕(德)은 ‘~’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이다. 그러므로 덕산포는 ‘동쪽에 있는 산 부근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 덕산개는 진해만 안에 있는 행암만 안쪽에 위치한 개이다. 만의 앞쪽에 여러 섬들과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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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행정동. 덕산동은 1789년(정조 13)의 통계인 『호구 총수』에 덕산리(德山里)라고 나오는 오래된 땅이다. 덕산의 경우는 주민들이 독메라는 마음 이름을 쓰고 ‘덕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었다. ‘덕산’이란 ‘독메’를 차자 표기한 이름으로 ‘독메’가 야산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덕산(德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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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사람과 차가 통행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길. 우리나라의 도로는 삼국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설되기 시작하였다. 487년(신라 소지 마립간 9년) “비로소 사방에 우역을 두고 관도를 수리하게 했다”고 한 기록이 그것이다. 이는 이전에 이미 관도가 설치·운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때 정비된 관도는 대략적으로 동해안로·추풍령로·죽령로 등 신라 서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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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선조 31년(1598) 왜군이 폐퇴하면서 많은 우리 동포를 납치해 갔다. 안골포는 왜군이 침입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수군 기지로 이용하였으므로 여기 함선이 우리 동포를 일본으로 싣고 갔던 것이다. 이때 웅천현에서도 유일하게 도자기를 생산하던 보개산 중턱의 점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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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 있는 고개.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과 부산광역시 녹산동으로 갈 수 있는 고갯길이다. ‘두동(頭洞) 고개’라는 지명은 ‘기티[機峴]’로 차자 표기하기도 하며, 허황옥 공주가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이 고개에서 비단 바지를 산신에게 바쳤다고 하는데서 ‘비단 고개’라고도 하고, ‘돌곳재’, ‘돌꼇재’라고 부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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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대외 교역과 문화 교류. 경상남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2010년 7월 1일부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어 창원시가 되었다. 행정 구역 변천에 따라 통합과 분리 과정을 거듭해 왔지만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역사 발전 과정으로 볼 때 창원 지역은 바다와 강을 통한 교역과 문화 교류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고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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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지역에 있던 포구.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 웅천현에서 동쪽으로 10리에 있다고 하였다. 부곡포의 ‘부곡(釜谷)’은 지모신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이 깃들어 있는 골짜기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 『진해 땅 이름』에 의하면 부곡포는 두동리 앞 개를 지칭했을 것이라고 한다. 두동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형성된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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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성내동은 웅천현 읍성 안에 취락이 이루어져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사대문 안 인 읍성 내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방 양반인 지방 관리들이어서 읍살이를 한다고 하였고, 성 밖에 사는 사람을 외살이를 한다고 하였다. 성내동은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 웅신현(熊神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골포현이 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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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조상으로 하여 이어져 내려오는 단일 혈족 집단. 성씨란 일정한 인물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단일 혈연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다. 현재는 동일 성(姓)을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의 출생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의 칭호이다. 후대의 성씨는 한자식 표기로서 이름 앞에 붙어 족계를 나타내는 동계 혈족 집단의 명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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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1915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이 대폭 개정되어 발표된다. 이 규칙의 내용은 사립학교 설치는 반드시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인가 없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당시 사립학교 사정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였고, 그 적용 범위는 한국인을 교육하는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었다. 학교의 경영자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규칙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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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과 진해시 경화동·석동을 연결하는 고개. 안민령이라고도 부르는 안민고개는 장복산(長福山·長卜山)의 안부에 형성되어 있는 고개이다. 안민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잇는 육로상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즉 웅천현에서 창원부의 읍성으로 이르는 육로상의 지름길로서 매락고개에 비해 더욱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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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민령(安民嶺)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안민령(安民嶺)은 창원시 안민동과 진해구의 경화동·석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안민 고개라고도 부른다. 안민 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잇는 육로상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웅천현에서 창원부 읍성에 이르는 육로상의 지름길이었다.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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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 안민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자여도(自如道) 예하의 역원으로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국가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자여역의 남쪽 길에 배치된 역이다. 안민역이 있던 자리는 공단과 시가지로 변모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안민동은 안민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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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신태우(申泰佑)[1851~1926]의 문집. 신태우는 자가 경선(敬善)이고,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석범(申錫範)이고 어머니는 풍산(豊山) 홍씨(洪氏) 홍희택(洪羲宅)의 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지고 난 뒤 항상 지내던 서실(書室) 근처에 산소를 썼는데, 주변 한 사람이 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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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양(梁)’은 북쪽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인 ‘돌’의 차자(借字)이며, ‘곡(谷)’은 골짜기의 뜻이므로 북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문헌에 나타난 양곡동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양곡포(梁谷浦)가 웅천현에서 서쪽으로 5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호구총수(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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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설치한 특수 행정 구역. 완포향(莞浦鄕)이 언제부터 창원시 진해구의 지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포현으로 승격되는 1281년(충렬왕 7)까지는 합포현의 완포향이었다. 1281년에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공로가 있다 하여 완포현으로 승격되어 금주[지금의 김해]의 관할이 되었다. 이후 조선 문종 때 웅천현의 속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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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행정동. 웅천현(熊川縣)의 동쪽에 위치하여 웅동(熊東)으로 명명하였다. 1910년 마산부제(馬山府制) 실시로 마산부 진해면이 되었고 1914년에 창원군 진해면으로 바뀌었다. 1931년에 진해면이 진해읍(鎭海邑)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에 읍이 다시 진해시(市)로 승격함에 따라 리(里)가 동(洞)이 되었다. 1997년에 웅동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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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행정동. 웅천현(熊川縣)의 동쪽에 위치하여 웅동(熊東)으로 명명하였다. 1910년 마산부제(馬山府制) 실시로 마산부 진해면이 되었고 1914년에 창원군 진해면으로 바뀌었다. 1931년에 진해면이 진해읍(鎭海邑)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에 읍이 다시 진해시(市)로 승격함에 따라 리(里)가 동(洞)이 되었다. 1983년에 의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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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 소사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웅동 소사 당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달집제와 당산제를 겸하여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웅동 소사 당산제는 언제부터 지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상당히 큰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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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과 2동에 소재한 만. 창원시 진해구 웅천과 웅동 1동과 2동에 의해 둘러싸인 만이다. ‘웅동만(熊東灣)’이 있는 웅동은 조선 시대 웅천현에 속하였다. 1908년 창원부에 통합되고, 1914년 창원군 웅동면이 되었다. 1983년 진해시에 편입되면서 웅동동이 되었다. 2010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과 2동이 되었다. 웅동은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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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웅산 산신제는 매년 4월과 10월에 웅천 마을을 지켜주는 웅산의 산신에게 마을 주민들이 행하는 집단 제의이다. 웅산 산신제의 연원은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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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덕왕 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 웅지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웅신현으로 고쳐서 의안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금주[김해]에 예속되었다가 조선 1452년(문종 2)에 웅신현과 완포현을 합쳐 웅천현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웅천현 건치 연혁조에는 “본래 신라의 웅지현이다. 경덕왕이 웅신이라 고쳐서 의안군의 속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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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 웅천을 본관으로 하고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는 세거 성씨. 웅천 김씨(熊川金氏)의 선계(先系)는 문헌의 실전으로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다. 『웅신백사적기(熊神伯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말에 견훤이 수차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의 명을 받아 5,000 장병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이를 격퇴시키고 돌아오자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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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의 옛 지명. 조선 초기 웅천현이었던 현재의 진해는 1510년(중종 5) 삼포 왜란을 맞아 그 지리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해에 웅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512년 다시 웅천현으로 환원되었다. 제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이 웅천에 거주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정되었고, 특히 삼포 왜란을 통해 이 지역 안보와 지리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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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까지의 진해시 지역은 1452년(문종 9)에 웅신현(熊神縣), 완포현(莞浦縣), 천읍부곡(川邑部曲)과 창원 남산 일부를 합하여 웅천현이 된 이래 조선시대에 계속해서 웅천현(熊川縣)으로 존재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전국 행정 구역이 23부 336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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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웅천(熊川)에 설치되었던 군사 주둔 지역인 진(鎭). 진(鎭)은 변경 방어상의 요충지이며 군사가 주둔하는 지역이다. 조선왕조가 개창된 이후에도 전국의 군사적인 방어체계를 재편하였다. 이 과정에서 세조 때 진관체제(鎭管體制)가 등장하였다. 웅천진(熊川鎭)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군사 관계를 보면 진해(鎭海)와 함께 웅천(熊川)은 김해진관(金海鎭管) 소속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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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웅천현(熊川縣)은 1452년(문종 2)에 웅신(熊神)·완포(莞浦)의 두 현과 천읍부곡(川邑部曲)을 통합하여 웅천현(熊川縣)으로 승격하면서 설치되었다. 웅천현에는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수군 진(鎭)이 있었던 관계로 무관이 배치되었다. 웅천현을 보호하는 성(城)으로는 진해 성내동, 남문동, 서중동 일대에 소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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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조선 시대 웅천현의 역사와 인물, 물산 지역적 특성 등을 기록한 읍지. 『웅천현 읍지』는 1866년(고종 3)에 국가의 명으로 편찬된 지방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지방지는 한강 정구가 함안의 역사와 인물, 특산물, 산천 등을 기록하여 간행한 함주지가 처음이다. 이러한 함주지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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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철학, 사상, 윤리로서 정치, 문화, 교육 등 개인적·사회적 활동의 원리로 존재해 왔다. 유교는 한국 역사상 삼국 시대 전기에 도입된 이래 학교 교육과 사회 제도를 통해 발전하면서 개인과 가족의 윤리에서부터 국가의 정치사상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삶 전체를 유지하는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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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의 군사 도시이자 근대적 계획도시로 건설된 일제 시기의 진해.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까지의 진해시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웅천현(熊川縣)이었으나 1912년 1월 웅중면 전부와 웅서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해면(鎭海面)으로 개편하면서 ‘진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 일본 해군의 군항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바다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가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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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본역을 두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로. 자여도는 창원도호부를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도호부, 서쪽의 함안군, 남쪽의 웅천현, 북쪽의 칠원현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의 교통로이다. 역로 개설의 특징은 대체로 자여도의 동서쪽 길은 낙동강 유역의 남쪽 외연을 동서축으로 연결하며, 남쪽 길은 고개를 넘어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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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시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역사. 창원은 본래 굴자군(屈自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의안군(義安郡)로 고쳤고, 지금의 마산 지역인 회원현(會原縣)은 본래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두 현을 모두 금주(金州) 관하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고, 1282년(충렬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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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조선 시대 최초의 개항장.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속한 제포는 조선 초기 최초 개항지의 대표적인 장소로 원래 이름은 내이포(乃而浦)이다. ‘내이포’라는 명칭은 주위에 냉이가 많이 나 있어서 ‘냉이개’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내이포’로 표기하였다가 냉이 ‘제(薺)’자를 써서 ‘제포(薺浦)’란 한자말로 굳어졌다. 제포는 조선 초기 조정의 대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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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 있는 섬. 지리도는 쥐가 많아서 ‘쥐들이 섬’이라고 한 이름을 지도리섬으로 차자 표기하였다는 민간 어원설을 제기하는 지역 인사가 있었다. 그런데 비변사의 웅천현 지도에는 벌질섬으로 표기되어 있는 바 그 어원은 알기 어렵다. 현재는 지도리섬이 지리섬으로 불리고 있다. 섬의 면적은 2만 331㎡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170m,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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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소재한 만.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만으로 교동리, 진동리, 사동리, 신기리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소규모의 만이다. ‘진동만’이라는 지명은 만이 위치하고 있는 진동면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동’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진해현에 속한 동면에서 유래하며, 조선 말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잡기 위해 일본이 군항지를 웅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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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웅천 읍지』에 의하면 서광사지는 웅천현에서 북쪽으로 10리[약 4㎞] 지점인 웅산(熊山) 아래에 위치하며, 예부터 광석사(廣石寺)라고 불렸다고 되어 있다. 오래되고 낡아서 헐어내고 1826년(순조 26) 웅천 현감 김명혁(金命赫)이 다시 세워 서광사(西廣寺)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진해 서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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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에 있는 여귀를 위로하는 제사터. 진해 여제단 터는 『웅천 읍지(熊川邑誌)』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1998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해 여제단의 존재가 밝혀졌다. 여제는 목적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무속의 지노귀굿·씻김굿·망묵굿이나 불교의 천도재 등과 유사한 사령제 또는 위령제이다. 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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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청안동 청천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수군 별장진터. 『웅천현 읍지(熊川縣邑誌)』에 의하면, 청천진(晴川陣)은 웅천현[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의 옛 고을 이름] 동쪽 20리 지점에 있으며, 별장(別將)이 거느리는 전선[판옥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伺候船) 2척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청천진의 ‘진’은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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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해안가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방 유적. 현재의 진해구 풍호동 해안가에 위치한다. 『웅천읍지』에 따르면 웅천현에서 서쪽으로 30리 거리에 위치하며, 본래 별장(別將)이 주둔하였으나 1606년(선조 39) 수군을 배치한 수군 기지가 되었다. 그 후 1669년(현종 10)에 사포(蛇浦)로 옮겼다가 1751년(영조 27)에 당시 경상도 관찰사 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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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다양한 종교. 종교(宗敎)란 ‘신(神)이나 초인간적·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인간들의 경외와 숭배, 신앙하는 일의 총체적인 체계’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류 문명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전근대 시기 진해구의 종교 현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지만 이곳은 불교·천주교·기독교나 혹은 신흥 종교인 천리교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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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한 행정 구역. 진해(鎭海)는 바다를 지키는 진(鎭)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진해구가 속한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거주가 이루어진 장소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웅천현이었으며 1908년 창원부에 합병됐으나 일제 강점기 진해를 군항으로 만들고 1912년 군항 지역을 진해면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에 창원군 진해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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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서 주로 정치 군사적인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운용된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지방과 변경의 긴급한 상황을 국왕에게 신속히 전달하기 위하여 마련한 통신 제도이며, 주로 정치 군사적인 목적에서 설치, 운영되었다. 기록상 봉수제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인데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봉수로는 고산 봉수(高山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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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참(驛站)은 일반적으로 공문서의 전달 및 정부 물자의 수송과 관리들의 왕래 등에 이용된 시설이다. 즉 역(驛)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이 제공되었던 곳이다.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숙박 및 공물 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역(驛)은 참(站)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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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웅천현 지역에 1912년 일본 해군 군항이 들어서며 붙여진 명칭의 유래. 진해 지역은 1452년(문종 9)에 웅신현(熊神縣), 완포현(莞浦縣), 천읍부곡(川邑部曲)과 창원 남산 일부를 합하여 웅천현이 된 이래 조선 시대에 계속해서 웅천현(熊川縣)으로 존재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전국 행정 구역이 23부 336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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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도호부 관내에 설치되었던 물품 저장 또는 보관 시설. 창고는 창원 도호부가 행정이나 군사 업무의 수행 과정에 필요한 곡물 및 무기류 등의 보관과 관리를 위해 관내에 설치·운영한 시설이다. 『창원 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당시 창원 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가량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창원 도호부 관내의 창고들을 설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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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 마산 석전동 봉화산 봉수대는 회원동과 석전동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 성내에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상황을 수도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쌓았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지도에서는 ‘성황당 봉수대’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창원 지역의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봉화산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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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과 비봉동에 걸쳐 있는 성. 진해 완포현 고산성은 고려 말인 1384년(우왕 10)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완향성·비봉산성·현동산성이라고도 불렸다. 진해 완포현 고산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 산2 일대와 비봉동 산26 일대에 걸쳐 있다. 고려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 완포현의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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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과 남문동과 서중동에 걸쳐 있는 조선 시대 웅천현(熊川縣)의 읍성 터. 진해 웅천 읍성 설치의 주요한 이유는 읍성 남쪽 제포 왜관에 상주하는 항거왜인(恒居倭人)의 세력이 급증하자 이들의 준동(蠢動)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434년(세종 16)에 건립에 착수하여 1435년(세종 17)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1452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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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 대장천 일대에 있던 부곡. 부곡은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 시대까지 존속하였다. 고려의 부곡은 고려 태조대 본관제의 편성과 토성 분정 과정에서 나말 여초에 존속하던 공동체적 질서에 따라 편제되었다. 『세종 실록 지리지』 권 150, 경상도, 진주목, 김해 도호부에 의하면 “부곡은 두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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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현동은 완포현의 관아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현동은 완포현으로 승격되어 조선 초기에 웅천현에 통합되기 전까지 행정의 중심지였다. 현동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웅천현 상서면에 속한 현동리(縣洞里)로 나타난다. 현동은 1914년 도만리와 도천리 일부를 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