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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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효성중공업 노동조합 지원을 위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 벌였던 연대투쟁. 1991년 하반기 효성중공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된 후 해고자 2명을 노조 전임자로 결정하자 사용자측이 이들 해고자의 회사 출입을 막고 민주파 집행부의 활동을 탄압함으로써 노사 간에 격돌이 예고되고 있었다. 효성중공업 사용자측에서 해고자들의 회사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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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2일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사무실을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습격한 사건. 1988년 노태우 정권의 출범 이후로 학생과 재야인사에 이어 노동자까지 테러를 당하는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1988년 8월 서울의 ‘우리마당’ 피습 테러, 1989년에는 현대중공업 연쇄테러, 3월의 김종대 중위 테러, 5월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피습 테러, 6월의 가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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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을 전후로 경상남도 창원·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주의혁명운동.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하여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를 기치로 일어난 민주주의혁명으로, 4·19의거 또는 4월혁명이라고도 한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에 동조한 시민들이 연합하여 전개되었으며 당시 창원·마산 지역의 경우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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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산호공원에 있는 비. 창원 출신의 시조 시인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이 지은 시조 「가고파」[김동진 작곡]는 창원을 노래한 시이다. 가고파 노래비는 이은상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그의 대표작인 ‘가고파’를 통해 창원의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졌다. 가고파 노래비에는 이은상의 깨끗한 뜻과 노래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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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서화첩. 『계묘사마동방계회첩(癸卯司馬同榜契會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총독(總督)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유물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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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창원 지역에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 창원군 상남면 지부. 1945년 8월 초 일본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문제와 앞으로의 한일 관계의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필요했다. 이에 여운형(呂運亨)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고, 8월 15일 총독부 정무총감의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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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이 ‘민주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대적 사건과 배경.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서울에서는 여운형의 주도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조선 건준]가 결성되었다. 8월 17일 발표된 조직 명단을 보면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총무 부장 최근우, 재무 부장 이규갑, 조직 부장 정백, 선전 부장 조동호, 무경 부장 권대석 등 사회주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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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에 있는 사립 종합 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은 독립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건학 이념에 따라, ‘진리, 자유, 창조’를 교육 이념으로 하고, ‘교양 있는 전문인, 지역 발전의 창도자, 주체성 있는 세계인’을 교육 목적으로 하고 있다. 경남 대학교의 출발은 1946년 12월 서울에서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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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경상남도 종합 일간지. 1998년 구 『경남 매일』 기자들을 중심으로 도민 주주 신문 창간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약 6,000명의 도민 주주를 모아 1999년 3월 22일 창립 주주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999년 5월 11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대판 형태로 제작하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회 발행한다. 매일 20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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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본점을 둔 경상남도의 대표 은행. 1970년 4월 15일 마산시 완월동에 위치한 마산 대학[현 경남 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초대 최희열 전 서울 은행 상무이사를 은행장으로 임명하였다. 1970년 5월 22일 마산시 오동동에 위치한 임시 행사에서 첫 영업을 개시하였다. 개업 축하금 10만 원을 예금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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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안부. 우리나라 최고의 고개는 함경산맥의 금패령으로 1,676m이다. 고개에 대한 한자 이름은 여러 가지인데, 영(嶺)은 대관령이나 진부령 같은 높은 큰 고개에 사용되었으며, 그 외에 아현·대현과 같은 현(峴)이나 팔량치·우금치처럼 치(峙)를 쓰기도 한다. 창원 지역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마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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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모산마을 경로당 에는 거실은 물론이고 방의 벽에 빼곡히 사진들이 걸려 있다. 방에 걸린 사진들은 지난 30년간의 북모산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북모산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문학봉 옹(78세)이 향우회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요것도 향우회 할 때 찍은 사진이고. 그때 나는 종친회 한다고 빠졌지. 향우회를 열고 마을회관 앞에서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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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에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 과거제는 신라 시대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에서 그 시원을 찾기도 하나, 관리 선발의 제도로 처음 도입된 것은 고려 시대인 958년(광종 9)이었다. 고려 시대 과거제는 문관 시험인 진사과(進士科)와 명경과(明經科), 기술 관료를 선발하는 잡과(雜科), 그리고 고려 말에 잠시 실시된 무과(武科)가 있었다. 초기 시험의 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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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수단 및 도로와 철도 등의 관련 시설. 창원 지역에서의 교통은 전통적으로 물길을 많이 이용해 왔다. 그것은 창원 지역이 처한 지리적 배경에 기인한다. 물길의 이용은 멀리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창원 지역 곳곳에 분포하는 조개더미와 거기서 출토된 유물이 그 증거이다. 특히 성산 패총과 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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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구마산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 1919년 3·1 운동이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마산 지역[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 3일 오전 11시쯤 두척산[무학산]에서 고종 황제 국장 행사에 모인 시민들에게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항일 궐기를 고취하는 연설과 함께 독립 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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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야구단 1920년대 김성두를 주축으로 구성 야구단이 조직되어 서울과 부산 등의 야구단을 초청하여 경기를 열었다. 이후 경제난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마산 운동계의 유지 김계호와 김종수의 도움으로 운동 기구를 사서 활동을 하였다. 구성 야구단은 야구 경기뿐만 아니라, 마산 지역에서 개최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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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영대(權寧大)[1885~1946]는 1919년 3월 28일 창원군 진동면(鎭東面) 고현(古縣) 장날 독립 만세 운동과 4월 3일의 ‘삼진[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의거’를 주도하였다. 서울의 3·1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조선 국권 회복단’의 단원 변상태(卞相泰)와 동지 변상섭(卞相攝), 권영조(權寧祚), 권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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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권영조(權寧祚)[1883~1955]는 진동면 고현리에서 태어나 1910년 향리에서 사립 경행학교를 설립하였다. 인근의 청년들을 모아서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진전면 일암리 변상태의 집에서 권영태, 권태용 등과 같이 거사를 계획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돌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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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산청 출신으로 마산과 경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권우성(權又成)[1915~?]은 1931년 3월 서울 중앙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2월 6일 새벽 일제의 열하(熱河) 출병을 반대하는 반전격문(反戰檄文)을 살포하다 검거되어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34년 8월 마산에서 독서회, 적색 노동 조합 결성을 위해, 1935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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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해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갱(汝賡), 호는 유연헌(悠然軒)이다. 권무열(權武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연(權연:土+延)이고 아버지는 권방희(權邦熙)이며, 어머니는 함안 조씨 조성민(趙性旻)의 딸이고 부인은 진양 정씨 정규준(鄭奎俊)의 딸이다. 권재고(權載皐)[1867~1905]는 1894년(고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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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한학자. 김달진은 1907년 2월 4일 경상남도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났다. 진해시 소사동은 당시 창원군에 속한 지역이었다. 김달진은 젊은 시절 불교의 세계를 접하고 수도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불교에 대한 김달진의 열정은 작고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김달진은 1989년 6월 7일 오전 11시 10분 82세의 나이로 서울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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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신묵재(愼黙齋). 아들로 김수광(金秀光)이 있다. 김불비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리총랑(典理總郞)·보문각직제학지교를 거쳐 서해도안무사·성균좨주겸의랑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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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김해김씨 판서공파 김석근의 묘. 김석근 묘는 김해김씨 판서공파의 선산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묘이다. 김석근은 환성헌(喚惺軒) 김수광(金秀光)의 아들이며 현감 김석공(金錫貢)의 아우이다. 김석근 무덤 서쪽 편에는 김해김씨 판서공파의 재실인 금호재가 있다. 김병린(金柄璘)의 『금호재기(琴湖齋記)』에는 금동의 판서공파 내력과 금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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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金純)[1900~?]은 1919년 3·1 운동 당시 창신 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때 사촌 매형인 배동석(裵東奭)이 서울 만세 의거에 참가 한 후 마산으로 내려와 창신 학교 교사 임학찬에게 서울에서 가져 온 『독립신문』을 전하였다. 『독립신문』을 읽은 후 학우들과 밤을 세워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등사하였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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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출신의 아동 문학가. 김원룡(金元龍)[1911~1982]은 1929년에 마산 공립 보통학교[현 마산 성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경남 도련 집행 위원의 서기를 지냈다. 1946년 2월에는 아동 잡지 『새동무』를 창간하였고, 1947년 9월 동요 동시집 『내 고향』을 발간하였다. 1947년 조선 식산 은행에 근무하면서 1948년 조선 식산 은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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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포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축한 2층 가옥. 김위성 가옥은 1930년경에 건축한 2층 주택으로 전해 오며, 소설가 지하련(池河蓮)[1912~?]의 셋째 오빠 이상조가 일제의 징용을 피해 은둔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지하련이 서울에서 내려와 거주했다고 하며, 집 옆에는 우물이 있다. 집 뒤는 산호 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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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이후 창원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김조이(金祚伊)[1904~?]는 조봉암(曺奉岩)의 부인으로 1922년 서울에서 여자 고학생 상조회의 조직을 시작으로 192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1월 경성 여자 청년동맹 창립 대회에서 전형 위원 및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에는 전조선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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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조각가. 김종영은 1915년 6월 25일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131-1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김기호와 어머니 이정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종영은 어려서 선친 밑에서 한학과 서도를 익혔다. 1982년 6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교육자·조각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 김종영은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현대적이고 수준 높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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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에서 활동했던 시인. 김춘수(金春洙)[1922~2004]는 1935년 통영 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42년 일본 대학 예술 학원 창작과 재학 중 사상이 불온하다 하여 퇴학당하였다. 이후 경찰서에 6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서울로 송치되기도 하였다. 1945년 통영에서 유치환·윤이상·김상옥 등과 ‘통영 문화 협회’를 만들고, 노동자를 위한 야간 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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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활동한 무용가. 김해랑(金海郞)[1915~1969]의 본명은 김재우(金在宇)이다. 6·25 전쟁 직후에 한국무용 예술인 협회[현 한국 무용 협회 전신]를 창설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마산에 무용소를 개설하여 한국 무용계의 대들보 노릇을 하며 평생을 후진 양성에 이바지 했다. 어릴 때부터 춤추기를 좋아하여 부산 동래 고보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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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농어목 망둑어과의 문절망둑[꼬시락]으로 만든 생선회. 꼬시락은 망둑어, 문조리, 꼬시래기 등으로 불리는 망둑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정식 명칭은 문절망둑이다. 김려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는 문절어(文䲙魚)라고 기록되어 있다. 앞쪽은 원통형이고 뒤쪽은 측편하여 눈이 작다. 몸빛은 옅은 황갈색 또는 회황색이며 옆에 약 5개의 불분명한 회흑색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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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마을 사람들은 천주산 자락에 있는 굴현을 넘어야만 가까운 창원과 마산, 그리고 더 큰 도회지로 나가서 필요한 것들을 받아 온다. 아주 오래 전에는 하루 한두 번만 버스가 다녔다. 걸어서 한 시간인 창원 5일장에 부모님을 따라 가보는 것도 어려웠다. 마을 밖 일을 알지 못하는 개구쟁이들은 귀동냥으로 창원과 마산, 그리고 마산의 큰 바다를 상상하며 자랐다. 상상으로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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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출신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나길조(羅吉祖)[1923~2008]는 일본 메이지[明治]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7년 제 1회 조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부산·전주·서울·대구 등의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역임하고 청주·전주·부산의 지방검찰청 지방검사장을 역임하였다.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대검 검사, 1973~1975년 광주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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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나영철(羅英哲)[1912~?]은 1928년 조선 박람회를 이용해 러시아로부터 비밀리에 들어온 이종림(李宗林)을 중심으로 고학당 학생과 화신 상회 점원 등에게 연락하여 주의 선전과 기관 조직 활동을 하였다. 1930년 4월 서울에서 이종림의 지도 아래 조선 공산당 재건을 위한 야체이까를 조직하였다. 1930년 7월에 마산으로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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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은 한국의 대표 동요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우물처럼 깊게 배인 이 동요를 한국인의 가슴에 새겨준 사람은 동원 이원수이다. 이원수는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열 달 만에 창원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마산으로 이사하여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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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 문학 동호회. 남도 시문학회는 모든 문학적 기류가 서울을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향안·강득송·김종두·이월춘·장정숙 등 창원 지역 시인들이, 등단 이후의 신분적 차별 등에 맞서고, 활발한 창작을 통해 지방 분권적 문단을 조성하여 한국 시단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2002년 5월 15일 창립을 선언하고 오늘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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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월 1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발간된 지방 신문. 경상남도 지역 신문의 시초는 1909년 8월 19일 창간된 『경남 일보』이다. 2010년 7월 옛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 등 3개시가 통합한 창원시 지역 내에서는 1946년 3월 1일 창간된 『남선 신문』이 최초의 지방 신문이다. 『남선 신문』은 해방 후 마산에 1945년 12월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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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속하는 행정 구역. 내서읍은 안성리, 중리, 평성리, 호계리, 용담리, 상곡리, 삼계리, 신감리, 감천리, 원계리 등 10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내서읍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면 일운과 서면 이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확인된다. 조선말 내서면이 되었다가 1995년 창원군에서 마산시로 편입되면서 내서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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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노동자 계층이 그들의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조직한 운동. 노동 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노동 조합 운동이나, 노동 운동이 모두 노동 조합 운동인 것은 아니다. 노동 운동은 목적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생산자로서의 임금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 시간 등 노동 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 조합 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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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북면 일원에서 매년 11월에 열리는 향토 특산물 축제. 창원시의 특산물인 단감은 1910년대 북면 연동마을 일대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동읍과 대산면으로 확대되어 약 11.90㎢의 면적의 1,500여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다. 창원단감은 황토질의 야산 개발 사업에 따른 비옥한 토질과 긴 일조 시간, 용이한 수송과 판로 개척 등 유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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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대산리에서 단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단똥장수」는 꾀 많은 사내는 벌꿀을 먹고 서울에서 단똥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으나 욕심쟁이 사내는 날콩과 물을 먹고 서울에서 물똥을 팔려다가 몰매만 얻어맞았다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1982년 의창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의 전통』에 실려 있다. 옛날 옛적 어떤 곳에 아주 꾀가 많은 사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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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복리에 전승되는 전설. 『마산의 문화유산』[마산시, 1997]에 수록되어 있다. 아득한 옛날 구복리 본동에 민가 몇 집이 있었다. 서울의 어느 대가에서 유명한 풍수를 시켜 전국을 두루 살펴 그 부모의 유택지(幽宅地)를 구하도록 했는데, 몇 달이 걸려도 마땅한 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 풍수가 국내의 지명을 살펴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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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계열의 범 정당 정치 단체인 독립 촉성 국민회의 마산 지부. 이승만 계열인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 계열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중앙 위원회가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통합 결성하였다. 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 지부가 인민 위원회로 개편되기 이전 급속히 좌경화되었는데 건국 준비 위원회에 초기에 참여했던 우익계 민족주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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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해방 운동 비밀 결사 조직인 조선 국권 회복단 마산 지부에서 안확·이형재·김기성·배중세(裵重世) 등이 활동하였다. 1. 창원 읍내 3월 중순 들어 경상남도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창원 읍내에서도 애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만세 운동이 비밀리에 계획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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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화랑이자, 지역 미술인들의 활동 공간. 1973년 8월 31일 처음 문을 연 뒤 40여 년간 지역 미술인들의 사랑방으로 마산 뿐만 아니라 통영·진해·진주·부산·대구·광주·서울 등 전국에 걸쳐 유명 화가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 예술 공간이다. 동서 화랑은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의 활동 공간을 제공하여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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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이 들어서면서 각지로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횟집이 하나 있다. 석교마을 626-1번지에 있는 시내버스 종점에서 500m 가량을 더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똘똘개횟집이다. 홍태식 씨(54세)가 횟집을 시작한 것이 1993년경이었으니 어언 15년이나 된 곳이다. 횟집의 상호도 예전 구전으로 불리던 똘똘개라는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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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결핵 전문 의료 기관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치료를 위해 머물렀던 곳. 마산 결핵 요양소의 주요 기능은 결핵 환자의 진료와 임상 연구, 그리고 기타 국가 결핵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요양소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결핵 퇴치의 요람이었으며, 이곳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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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 양지, 사태 등의 쇠고기를 진하게 고아서 끓인 마산 지역의 향토 음식. 곰탕은 예전부터 황해도에는 해주 곰탕, 서울·경기에는 서울 곰탕, 전라도에는 나주 곰탕, 경상도에는 마산 곰탕, 부산 곰탕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근래에는 현풍 곰탕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마산곰탕은 1950년대 이후부터 마산을 찾는 외지인들 사이에 ‘마산 곰탕을 먹지 않았으면 마산에 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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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이후 경상남도 마산 지역[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서 일어난 교육 민주화 투쟁. 4·19 혁명 이후 경상남도 마산 지역 교사들이 교원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교육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다. 1960년 4월 29일 대구의 공립·사립 중학교·고등학교 교원 60여 명이 경상북도 대구시 교원 조합 결성 준비 위원회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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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창원부에 속한 조창 터. 마산 남성동 조창 터는 조선 시대인 1760년(영조 36)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의 계에 따라 대동미의 징수를 위해 창원부에 둔 조창의 터이다. 『경상도 읍지』 「창원부 읍지」 창고 관련 기록에 따르면 “해창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조창은 해창 곁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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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신인회 주도로 1923년 3월 14일 마산 노농 동우회가 창립되어 노동절 행사와 노동 운동 지원 활동, 노동자의 파업과 분규를 중재하는 임무를 수행한 단체. 1923년 5월 1일 제37회 노동절을 맞아 마산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오학선, 강덕보 등의 마산 노농 동우회 관계자와 이정찬, 김기호, 손문기 등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시가행진하였다. 여기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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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문인 협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성격의 연간 문예지. 『마산 문학』은 경상남도에 있는 각 문인 협회 지부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마산 문인 협회에서 발간하는 문예지이다. 시의 고장, 시향(詩鄕)이라고도 불리는 마산은 1950년대부터 문학의 열정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6.25 전쟁 때 서울의 문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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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말 경상남도 마산에서 발간된 비정기 간행물 또는 무크지(mook).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초 현실 비판적 정기 간행물이 줄줄이 폐간당하고, 언론에 대한 억압이 컸던 만큼 진실을 알고 말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 또한 점점 더 커졌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무크(mook)였다. 매거진(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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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마산 지역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 규명을 위한 활동. 1960년 4·19 혁명 직후, 그동안 이승만 정권에 억눌려왔던 6·25 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마산 지역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통영·김해·밀양·동래 등 도 내 인근 지역에서도 속속 유족회가 결성되었고, 경상북도 대구·경주·경산에 이어 서울에서 전국 유족회까지 결성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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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왜성 터. 마산 산호동 용마성지는 용마산성·창원성·마산왜성으로도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왜성이라는 이유로 해제되었다. 일본측 사서에서는 이 성을 창원성으로 기록했으며, 성 외곽에 함선이 직접 닿았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그와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산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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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무정부주의자. 1925년 김형윤을 중심으로 조한응, 김계홍 등이 조직하였다. 1927년 서울에서 김산이라는 무정부주의자가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외국인 선교사나 일제에서 벗어난 자주적인 독립교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중의 지지를 확보한 마산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창원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창원 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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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미더덕·어시장·오동동 ……. 잘 알려진 마산의 명물들이다. 마산의 명물 중에서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제대로 모른다. 통합 창원시가 마산 도심 재생 사업을 하면서 골목을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스토리가 약하다. 스토리가 없는 게 아니다. 마산 어시장과 오동동·창동 골목에는 마산의 역사와 정취를 고스란히 전해 주는 테마가 있다. 산업과 상업의 유형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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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지산리에 있는 창의탑.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제의 폭거에 항거하고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3·1 운동이 전개되었다. 마산 지역에서는 3월 3일 두척산에서 김용환(金容煥) 등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일 것을 발기한 이후, 3월에만 여러 차례의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만세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외곽 지역으로 확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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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산하 마산·창원 지부. 1987년 3월 서울을 기점으로 수출자유지역과 공단,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여성노동자회가 결성되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서울, 인천, 부천, 수원,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총 10개 지회로 구성된 여성노동단체의 전국 조직으로,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는 서울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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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남선 일보(南鮮日報)』의 편집국장이었던 다카스 메코우[高須瑪公]와 기자 나카타 준[長田純]이 마산에 관해 편술한 책. 『마산 현세록(馬山現勢錄)』은 일제의 통치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1929년에 간행된 것으로, 마산포 개항 30주년을 기념하고 그간 일제의 통치를 통해 드러난 근대 도시로서의 마산의 발전상과 미래에의 매진을 내외에 알리기 위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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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1960년에 활동한 ‘한국 영세 중립화 통일추진 위원회’의 통일 운동. 1960년 마산에는 기존의 통일 방식과는 사뭇 다른 ‘영세 중립화 통일’을 주장하는 단체가 등장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한 이후 김문갑을 위원장으로 하여 발족된 ‘한국 영세 중립화 통일 추진 위원회[약칭 중립 위원회]’가 그것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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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형성된 경상도의 최대 장시. 『만기요람』에는 마산장을 경상도의 최대 장시(場市)로 기록했다. 1899년에 마산포가 개항장으로 지정되자 기존 시가지[舊馬山] 남쪽 신마산(新馬山) 지역에 각국의 영사관 부지와 공동 조계(租界) 등이 들어서 도시가 급속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창원 감리서가 폐지되고 마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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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창원의 마산포를 외국인에게 개방하여 거주와 무역 등을 가능하게 한 사건. 1876년 일본과 수호 조규를 체결하고, 1880년대에 들어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잇따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호를 열게 된다. 문호의 개방은 1876년 동래의 부산포, 1880년 덕원의 원산포, 1883년 인천의 제물포 등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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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마산은 고사에 의하면 삼한 시대에는 변한의 일부라는 설이 있으나 삼한에 속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신라 35대 경덕왕 이전에는 마산항을 골포(骨浦), 마산을 골포현(骨浦縣)이라 불러 골포현(屈自郡)에 영속시켰는데 골포현 당시의 성지는 지금도 시내 환주산[추산동 정수장 부근]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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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이 발간한 신문. 『마창노련신문』은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일명 마창노련]에서 전국 및 지역 언론 노동의 소식 전파와 노동운동의 주요 과제 및 투쟁 방향을 조합원과 단위사업장에 전하기 위한 소식지 겸 교육목적용으로 발간한 기관 신문이다.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은 지역별노동조합협의회[일명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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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신기마을에 있는 압해정씨의 문중 재실. 모원재는 압해정씨(押海丁氏)의 시조 대양군(大陽君) 정덕성(丁德盛)의 6세손인 신라 문하시중 휘 광현공(光顯公)과 부인 진주강씨(晉州姜氏), 아들인 고려조 이부전서(吏部典書) 휘 우공(祐公)과 부인 거창유씨(居昌劉氏)를 제향하는 곳이다. 제향조의 묘소는 천주산 자락 경태룡(庚兌龍) 곤좌(坤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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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마을 입구에서 달천계곡 방면으로 400m 즈음 가면 3층으로 지어진 하얀색 건물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건물 앞에는 붉은색으로 적힌 우리이웃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우리이웃한우식당(북면 외감리 431-2번지)이다. 우리이웃한우식당의 주인인 김혜숙(48세) 씨는 고향이 전라남도 목포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음식점을 열기까지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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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에 있는 장류 제조 업체. 몽고 식품은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맛과 향을 더욱더 개선시키고,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장인(匠人) 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고객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 문화를 선도하고자 설립되었다. 1905년 11월 일본인 야마다 노부스케가 마산시 자산동 119번지에 산전 장유 양조장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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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인간의 육체를 표현 매체로 삼아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창원 지역은 시정을 전개한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둘 신설되었다. 이와 함께 중등학교 무용 교사들이 창원시에 이주해 오면서 무용인들의 모임이 최초로 결성되었고, 이 후 도시가 발달하면서 무용도 함께 발전하였다. 1. 1980~1990년대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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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형체가 없이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고 있는 문화유산. 창원 지역에서 무형으로 전승되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들과 바다를 무대로 생활해 온 창원 지역 사람들의 질박한 생활상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정된 문화재로는 문창제 놀이[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5호], 마산 농청 놀이[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 불모산 영산재[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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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에서 시작하여 조각가로 예술의 전성기를 누렸던 문신(Moon Shin)[1923~1995]은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긴 고독과 싸우며 예술가의 끈질긴 열정과 집념으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이룩하였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선두 주자로서 한국 화단에서 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흑단·주목 등의 단단하고 강한 재료를 갈고 닦아 만든 특유의 생명감 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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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삶의 가치 있는 경험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언어로 표현한 예술. 창원 문학의 시작과 생성, 발전은 창원의 본류와 다름없는 마산 문학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창원·마산·진해 지역의 문학인들은 1945년 광복 이후 억압되었던 창작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운 문화 창조의 길을 열었다. 광복 이후 이 지역 문화인들은 마산 문화 동맹을 조직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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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음악·미술·연극·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1980년 창원이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창원 지역 예술은 100여 년 전 개항한 마산시와 동일 생활권에 놓여 있어 모두 마산 예술로 설명되었다. 또한 1974년부터 국책 사업으로 추진된 기계 공업 단지 건설이라는 대명제 앞에 공장 용지 조성, 공장 유치와 건설, 배후 도시 건설 등으로 주민을 이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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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주조(酒槽) 양조업으로 유명했는데, 1937년 마산부에서 만든 관광 홍보용 리플렛 ‘관광 마산’의 표지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벚꽃, 마산 앞바다, 돝섬, 마산만의 배들이 그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거주했으며 『마산 항지(馬山港誌)』[1926]를 저술한 추방사랑(諏方史郞)은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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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은 한국사 개설서에도 이름이 나올 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세종 때 압록강 상류에 침입한 오랑캐의 추장인 이만주를 토벌하고 성을 쌓아 자성군을 두어 4군 설치의 기초를 만든 인물 정도로만 짧게 설명되고 있다. 최근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윤덕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최윤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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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에 일렁이는 곡식들은 지난 여름 농부의 땀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6월이었던가? 한 아주머니가 긴 논배미에 매달려 두렁을 치고 있던 것이. 마을 뒤편은 큰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산맥은 남으로 북으로 달려서 마산과 함안에 잇닿아 있다. 산은 창원의 주산 천주산이다. 그 앞으로 넓은 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곳이 외감(外甘)들이다. 아름다운 자연에는 인물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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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미를 표현한 예술로서 지역 특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활동. 창원, 마산, 진해의 미술을 개관하여 보면, 가야계의 미술 공예를 생성 원류로 하여 일제 강점기 동경 유학생들의 활동에서 현대적 미술의 여명기를 맞는다. 이후 창원 문화제 형성기를 거쳐 창원시 승격 이후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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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민원중은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10년(숙종 36) 3월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12년 7월에 교체되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1718년(숙종 44) 경상좌수사로 있었다. 1712년(숙종 38) 6월 민원중의 선정을 기리는 부사민원중청덕선정비(府使閔遠重淸德善政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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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 운동. 민주화 운동이란 3·15 의거, 4·19 혁명, 부마 항쟁, 6·10 항쟁 등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활동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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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대외 교역과 문화 교류. 경상남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2010년 7월 1일부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어 창원시가 되었다. 행정 구역 변천에 따라 통합과 분리 과정을 거듭해 왔지만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역사 발전 과정으로 볼 때 창원 지역은 바다와 강을 통한 교역과 문화 교류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고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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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박명훈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13년(순조 13) 6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에 교체되었다. 1814년에 창원부사로 재임 중 박명훈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박후명훈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朴侯明勳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 부임하여 자리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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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박홍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처음 이름은 박경립(朴敬立)이다. 박홍미는 15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병조좌랑, 1614년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 후 정언·지평·수찬·교리·헌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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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산에 있던 세곡 보관 창고. 조창(漕倉)은 조운창(漕運倉)의 약칭으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곡 보관 창고이다. 창원도호부 관할하의 반산창(盤山倉)은 좌조창(左漕倉)이라고도 부르며, 반룡산(盤龍山) 밑의 해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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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음성이나 영상을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청취 및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방송은 지상파 방송[공영 방송·민영 방송·특수 방송·지상파 DMB], 종합 유선 방송, 위성 방송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경상남도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은 KBS 진주 방송국·KBS 창원방송 총국·MBC 경남[경남 문화 방송] 이상 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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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재황(裵齋晃)[1895~1966]은 경상남도 진해의 개통 학교와 계광 학교 고등과를 수료하고 상경하여 경성 청년학교 중학과를 졸업하였다. 주시경(周時經)의 한글학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였으며, 19세에 고향으로 내려와 계광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승복(僧服)으로 혹은 노동자 차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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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중세는 1895년(고종 32) 12월 18일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동에서 아버지 배기홍(裵基洪)과 반남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1910년에 김해김씨 김달근(金達根)의 딸과 결혼했다. 배중세는 1919년 3·1운동 당시인 4월 3일 진전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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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승인(白承仁)[1899~1970]은 1919년 3월 28일의 창원 진동면(鎭東面) 고현(古懸) 장날 독립 만세 운동과 4월 3일의 삼진 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그는 3월 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귀향한 변상태(卞相泰)와 동지 권영조(權寧祚), 권태용(權泰容), 권영대(權寧大), 변상섭(卞相攝), 변상헌(卞相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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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백운사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무학산 서원곡 계곡에 있다. 1953년 2월에 창건된 백운사는 불모산 영산재가 보존되고 있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2002년 2월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2호 불모산 영산재(佛母山靈山齋) 예능 보유자가 된 김석봉[법명 철우]은 일찍이 승려 해담, 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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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백운사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무학산 서원곡 계곡에 있다. 1953년 2월에 창건된 백운사는 불모산 영산재가 보존되고 있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2002년 2월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2호 불모산 영산재(佛母山靈山齋) 예능 보유자가 된 김석봉[법명 철우]은 일찍이 승려 해담, 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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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음악의 만남 감동의 꽃망울 터지는 진해. 4월이 시작되면 우리나라 남쪽 지방 진해는 도심지뿐만 아니라 온 산과 언덕이 모두 꽃동산으로 바뀌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어느 수필가는 4월을 ‘인생은 빈 술잔/ 융단 깔지 않는 층계/ 4월은 미친 듯이 꽃 뿌리며 온다.’고 표현하였다. 4월이 되면 항상 이 글이 머릿속을 맴돈다. 화려한 벚꽃 축제로 대한민국의 봄의 시작을 알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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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상태(卞相泰)[1889~1963]는 부산상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0년 일제의 강점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최기백, 성학년 등 6명의 동지와 함께 조국 광복을 위해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대붕회(大鵬會)’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1915년 국내의 독립 세력을 확장하고 해외의 독립 운동 세력과 연계하여 최후로 독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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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종열(卞鍾悅)[1896~1974]은 1919년 4월 3일 창원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삼진 의거에 참가하였다. 변종열은 ‘대동 청년단’의 변상태와 동지 권영대, 권태용, 백승인, 황태익 등이 계획하고 도모한 삼진 의거에서 군중 동원 연락을 도맡아 대규모 시위를 감행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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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 일대 사찰에서 전승되어 오는 영혼 천도를 위한 불교 의식. 영산재는 석가모니불이 영산에서 행한 설법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오늘에 재현한다는 상징성을 지닌 법회로, 영산회상을 열어 영혼을 발심시키고 그에 귀의하게 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하동쌍계사에 주석한 진감(眞鑑)[774~850]이 행한 범패에서 비롯한다.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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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출신 반야월이 국립 마산 병원에 입원한 여인을 대상으로 지은 대중가요. 반야월[1917~2012]이 6·25 전쟁 당시 ‘방송국 위문단’을 만들어 국립 마산 병원[마산 결핵 요양소]으로 위문 공연을 갔는데, 우연히 객석에서 결핵을 앓고 있던 젊은 여인이 계속해서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곳의 ‘산장 병동’에 요양 중이었던 그 여인의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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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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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용지리에 있었던 미국 공보원 영화과 산하의 영화 제작 부서. 상남 영화 제작소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즉 ‘상남 라보라토리(Laboratory)’ 또는 이를 줄여 ‘상남 라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2년 5월 16일부터 이곳에서 『리버티 뉴스』가 제작·상영되기 시작한다. 『리버티 뉴스』가 지닌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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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시첩(詩帖). 『서담공서정록』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 縣立 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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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서영보의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경재(景在), 호는 죽석(竹石).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의 고손이며,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서지수(徐志修), 아버지는 대제학 서유신(徐有臣)이다. 아들 서기순(徐箕淳)도 뒤에 대제학에 올라 아버지로부터 부자손 3대가 대제학을 지내는 가통을 세웠다. 서영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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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의 중진 문인들 몇이 뜻을 합쳐 시와 시조를 중심으로 싣고자 발행하는 반 연간 문예지. 문예지의 현실이 어려운 시대 지역의 사정은 더욱 어렵지만 그런 틈에서도 『서정과 현실』은 문학과 서정을 지향하며 결실을 맺고 있다. 서울에서 발간되는 각종 문예지와 달리 지역의 문인에게도 지면을 많이 할애하며 새로운 서정시대를 위하여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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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대성동2가에 있는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 교회.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은 1954년 5월 1일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 협회로 창립된 신종교 단체로 약칭 통일 교회로 알려져 있다. 1994년에는 한국에서, 1996년에는 미국에서 창설된 신흥 종교이다. 1997년부터는 공식 명칭을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Family Fe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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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곡동에 있는 전문 국악 공연 단체. 손양희 국악 예술단은 대한 전통 예술 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라는 공통 이름으로 창원 지역을 비롯해 경상남도와 타 시도의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손양희 국악 예술단은 우리 국악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우며,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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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두대동에 있는 예술 단체. 솟대는 민간 신앙에서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세워 놓는 긴 나무 장대이다. 지방에 따라 소줏대·솔대·별신대 등으로 불리는데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긴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붙인다. 솟대패 사물놀이 예술단은 전통 문화 예술의 멋과 흥을 창조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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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일동리와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를 연결하는 다리. 수산교는 1959년에 건설된 교량을 개축하여 1997년에 준공한 장대 교량이다. 국도 25호선 대체 우회 도로로 구축한 수산 대교가 1997년에 준공되면서 국도 25호선이 수산교에서 수산 대교를 지나는 노선으로 변경된다. 이후 사람들이 수산 대교를 수산교라 부르고, 현 수산교를 구 수산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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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1915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이 대폭 개정되어 발표된다. 이 규칙의 내용은 사립학교 설치는 반드시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인가 없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당시 사립학교 사정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였고, 그 적용 범위는 한국인을 교육하는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었다. 학교의 경영자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규칙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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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은 점차로 심화되어 갔고, 우리의 국운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의 순간으로 내닫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하루 빨리 이 땅에 신교육을 통하여 몽매한 백성을 개화시켜 우리의 근대화를 실현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일제의 세력에 항거하면서 민족의 살 길을 찾는 것이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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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생활 민속놀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일제 강점기 벚꽃놀이에 대한 일화. 주로 신마산 주변의 천변과 장군천 등지의 봄 벚꽃 놀이 장소와 당시의 분위기 등을 언급하고 있어 당시 봄놀이 문화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진해의 벚꽃 축제에 밀려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마산 지역은 예로부터 봄철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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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서 송나라 주잠(朱潛)을 시조로 하는 세거 성씨. 신안 주씨(新安朱氏)의 본관은 중국 안휘성(安徽省) 휘주부(徽州府) 신안(新安) 지역이다. 성씨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안 주씨는 중국 송나라 신안현 사람인 주잠(朱潛)이 고려 고종 때 우리나라에 와서 나주(羅州)에 정착하면서부터 그를 시조로 하여 계대를 이어오고 있다. 주잠은 주자(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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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한국의 신종교는 300~4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수적으로 다양하고 각기 계통을 달리하지만 내적 구조는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동일해 보일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창원 지역의 신종교는 일제 강점기와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2013년 현재 창원 지역에는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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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 씨름의 발자취와 선수들의 활약. 씨름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로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 경기이다. 시대에 따라 각저(角觝)·각력(角力)·각희(角戱)·상박(相撲) 등으로 불린 씨름은 일제 강점기에도 마산 지역에서 활발하게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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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 있었던 아시아 국가 연대를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은 1954년 공산 침략의 위협을 받는 아시아 민족 상호 간의 반공 유대를 강화하여 자유 아시아의 집단 안전 보장에 공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이다. 한국, 자유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홍콩, 마카오, 류구 8개국이 참여하였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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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행정동 및 법정동. 석동은 북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장복산 줄기에 닿아 있고 서쪽으로 경화동·병암동, 동쪽으로 자은동, 남쪽으로 이동에 면해 있는 진해구의 중부권에 위치해 있다. 관할 법정동은 석동과 이동의 일부이다. 2012년 11월 30일 현재 가구 수는 6,768세대이며 인구는 1만 9745명이다. 1985년 상주 인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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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안준은 1919년 12월 5일 남면청년회를 결성하여, 3·1운동과 관련하여 옥고를 치른 설관수·송석민 등이 1920년 6월에 결성한 창원청년단과 함께 초기 창원 지역의 청년운동을 이끌었다. 1920년 12월 1일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서울에서 출범하자 경상남도 지역 청년단체 30개가 여기 포함되었는데, 안준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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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했던 국학자. 본관은 안흥. 호는 자산(自山), 운문생(雲門生)이란 필명과 팔대수(八大搜)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안확(安廓)[1886~1946]은 서울에서 태어나 소학교에서 신학문을 교육받고 독립 운동과 국학 연구에 참여하였다. 마산 창신 학교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일본에 유학하여 정치학을 수학하기도 했다. 독립 운동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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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했다. 이 여단은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는 1908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철저하게 부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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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경사를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안 김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하다가 형은 북빈경[강릉]에, 아우는 시염성[연안]으로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조선에 들어 김섬한의 6세손 김자지(金自知)가 있었고, 4대 뒤 영의정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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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창원 국가 산업 단지에 있는 S&T모터스와 대림 자동차 공업이 생산하는 두 바퀴 동력 이동 장치. 오토바이는 공랭식 또는 수랭식 엔진을 장착한 이륜 자동차로 1885년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가 세계 최초로 만든 이래 기본 유형은 크게 변하지 않고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동 수단 중 하나이다. 오토바이는 크게 포장도로를 달리는 온로드 모터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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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왜인들의 숙박 시설이 설치되고 교역이 이루어진 장소. 왜관(倭館)은 조선의 개항장에 설치하여 왜인들이 교역하고 거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공간이다. 창원 진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왜관은 조선 시대 왜인들이 교역을 하던 무역처로 제덕 토성과 제덕동 괴정 마을 사이에 있었으며 왜관지(倭館址)는 지금도 ‘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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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군대가 현재의 창원[진해구]에 일본식 축성 기술로 쌓은 성곽군. 왜성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이 조선에 건립한 성곽으로 현재의 창원[진해]에는 웅천 왜성, 명동 왜성, 안골 왜성 등이 있다. 이 왜성들은 임진왜란 강화 기간 내내 웅천[현 진해]에 축조되어 일본군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현재 유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왜성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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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우물낭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7년 경남농협에서 출간한 『경남전설을 찾아서』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때의 일이다. 여덟 번 과거에 낙방하고 아홉 번째 과거를 보기 위해 집을 떠난 장씨 성을 가진 젊은 선비가 있었다. 선비가 낭상골 깊은 골짜기에 접어들었을 때 날이 저물었다. 선비는 인가를 찾아보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가가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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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 웅천 지역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단체. 1920년 8월 1일 웅천 지역 향교에서 웅천 소년단 창립 준비 위원회를 열고 8월 8일 웅천 보통학교[현 웅천 초등학교] 교정에서 웅천 소년단 결성 대회를 열었다. 민족정신 고취와 청소년들의 단합을 위해 체육회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소년 단가와 소녀 단가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기상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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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마을은 창원의 주산인 천주산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창원에서 북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굴현을 지나 첫 번째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는 바로 이 앞으로 창원에서 서울로 가는 영남대로의 우로(右路)가 통과하였다고 한다. 외감마을은 농촌 지역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불과 몇 ㎞ 밖에 안 떨어진 창원시내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형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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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月下) 김달진(金達鎭) 시인은 아버지 김규석(金圭奭), 어머니 조용락(趙鏞樂) 사이에서 1907년 2월 4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동[현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향리에서 야은(野隱)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항일 민족 기독교 학교인 계광 보통학교에 들어가 13세인 1920년에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중앙 고등 보통학교를 다녔으나 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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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윤우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3년(선조 6) 안악군수에 이어 함흥판관이 되었다. 1581년(선조 14) 창원부사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이 후 영위사(迎慰使), 안주목사, 나주목사를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지중추부사로 급고사(急告使)가 되었으며, 같은 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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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소재로 박자·선율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를 통합한 창원시의 탄생은 역사적·지리적·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마산의 문화, 진해의 항만·물류, 창원의 산업 단지를 기반으로 한 동북아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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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이도환(李道煥)[1925~1983]은 마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서울고검 검사, 대구·서울 지검 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이후 대전·부산 지검에서 차장검사를 거쳐 대검찰청 검사, 중정차장보, 고시동지회 회장, 마산 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민주공화당 경남 제1지구당 위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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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등지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이동백의 본명은 이종기(李鍾琦)이며, 아명은 동백(東白)이다. 1867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태어났다. 은산별신굿 보유자이었던 이어인련(李於仁連)[1894~1986]과 육촌 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무속과 혈연 관계에 있던 창우(倡優) 집단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백은 15세 무렵부터 소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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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서양화가.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정규(正揆). 한의사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림(李林)[1917~1983]은 마산의 호신 농업학교[창신 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에 서울의 조선 미술원에서 서양화가 박광진(朴廣鎭)에게서 유화를 배웠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동경(東京)으로 가서 데이고쿠 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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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경남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직자이자 소설가. 이병주(李炳注)[1921~1992]는 진주 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하였으나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퇴하고 중국 소주(蘇州)에서 잠깐 동안 생활하였다.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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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의 지서장으로 헌신적으로 마을 일을 돌보아 준 인물. 이봉하(李鳳夏)[1926~?]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당시 진해 웅동의 지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웅동 경노당을 건립하고, 소사마을의 다리를 가설하는 한편 집안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 사업을 하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이봉하는 이후에 진해경찰서로 이직하여 수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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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배우. 이수련(李秀鍊)[1935~2007]은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의 배우였다. 1935년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동국 대학교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1959년에 「가난한 애인들」로 데뷔하였다. 한형모 감독의 이 작품은 최은희가 주연이었다. 이 작품으로 제3회 부일 신인상(釜日新人賞)과 제4회 국제 영화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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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교육가·민족 운동가. 이승규(李承奎)[1860~1922]는 경남 마산의 유지로 1906년 창신 학교(昌信學校)의 전신인 독서숙(讀書塾)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그는 호주 선교 본부의 승낙을 얻어 1913년 4월 5일 의신 여학교(義信女學校)를 설립하고 창신 학교 유지회를 조직하였으며, 1914년 5월 7일 추산정에서 민족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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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국내 기계 공업의 선구자. 8·15 해방 이전에 소규모 주물 공장으로 출발 1950년대 후반 육상용 디젤과 해상용 디젤기관을 대규모 생산 영세했던 기계공업을 궤도에 올렸던 기업인이다. 일제 후반, 일본의 한반도의 공업 중 규모가 기계공업은 대륙 진출을 위해 북한 지역에 집중되었고, 남한 지역은 농업과 상대적으로 영세한 경공업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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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일윤(李一允)[1890~1954]은 1919년 3월 경상남도 마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하였다. 3월 1일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마산으로 내려온 대동 청년단(大同靑年團)의 김관재는 동지 이형재 등과 회동하여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마산의거(馬山義擧)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창신(昌信) 학교, 의신(義信) 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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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해 현감을 지낸 한의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평(務平), 호는 동무(東武). 할아버지는 이충원(李忠源)이고, 아버지 이반오(李攀五)이며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씨(金氏)이다. 이제마(李濟馬)[1837~1900]는 사람들을 체격과 용모 등 육체적인 측면과 성질, 정서, 행동 등 정신적인 측면 등에 따라 네 가지 체질[四象]로 구분하여 환자의 진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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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경상남도 창원에서 이주민 스스로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다문화 축제.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접어들어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가 서로 공존하고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5년부터 실시해온, 이주민 스스로 참여하여 즐기는 축제이다. 이주민과 함께 하는 다문화 축제[Migrants' Arirnag multicultural festival, MAMF]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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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무용가. 이필이는 마산 출신의 무용가로서 주로 마산에서 활동해왔다. 활동 기간 많은 제자들을 길렀으며 수차례의 공연을 통해 전통 무용 보존과 보급에 힘써 온 인물이다. 아버지 이찬종과 어머니 구막이 사이에 3남 4녀 중 셋째다. 이필이(李畢伊)[1935~2009]는 명랑 쾌활한 성품과 예술적 재능을 천부적으로 지니고 태어났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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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이희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730년(영조 6) 10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33년 2월 공주영장(공주에 설치되었던 충청우영의 수장)으로 옮겨갔다. 1743년 황해병사가 되었다. 1735년(영조 11) 이희하를 기리는 대도호부사이공희하애민선정비(大都護府使李公希夏愛民善政碑)가 세워져 현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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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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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자여역을 담당한 종6품 벼슬. 창원도호부에서는 일종의 교통시설인 역(驛) 네 곳과 숙박시설인 원(院) 아홉 곳을 운영하였는데, 그 중 역으로는 자여역(自如驛)·신풍역(新豊驛)·근주역(近珠驛)·안민역(安民驛) 등이 있었다. 역에서는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들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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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장붕익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재(憂齋).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장차주(張次周)이다. 장붕익은 16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을 거쳐 1702년 11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엄을 베풀어 아전들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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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 1동 북부리에 전승되는 전설. 『진해 시사』[진해 향토 문화 연구소, 1987]에 수록되어 있다. 창원시 진해구 웅천 1동 북부리 얼음개산에는 장수 바위라고 전하는 바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웅천 남산에 왜적이 성을 쌓고 포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천리 장군이 산맥을 타고 빠른 걸음으로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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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 정기헌의 호는 백당(白堂)이며, 1886년 현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면 봉림리 62번지에서 정규엽(鄭珪燁)과 이근수(李根秀)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배일사상이 철저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일제에 협력이 되는 일이라면 아예 손대지 않았다. 아울러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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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의궤(儀軌)의 일종. 『제신제진(諸臣製進)』은 제시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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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제포(薺浦)를 1407년(태종 7)부터 1541년(중종 36)까지 기간 동안 왜인들에 대한 교린과 통제 정책의 하나로 개항(開港)한 사건. 태종은 1407년 다른 포구에는 왜선의 정박을 금지하고 경상좌우도의 도만호가 주둔하는 웅천(熊川)의 내이포(乃而浦)[薺浦]와 동래의 부산포(富山浦)를 개방하게 하였는데, 이로써 제포(薺浦)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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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에서 활동한 작곡가·피아노 연주가. 조두남(趙斗南)[1912~1984]은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미국 출신의 신부 조지프 캐논스로부터 서양 음악과 작곡을 배웠다. 11세 때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하였고, 17세 때 첫 가곡집을 발간했으며, 21세 때 가곡 「선구자」를 작곡하였다. 평양 숭실 학교를 졸업한 뒤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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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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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일대에 있는 수산물 시장. 마산 어시장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남성동·동성동·신포동에 걸쳐 있다. 어시장은 좁게 본다면 수산물을 팔고 사는 상행위를 하는 장소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위탁 판매와 경매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포함한다. 마산 어시장은 동서 방향으로는 옛 중앙 청과 시장에서 오동동 복골목까지이며, 남북 방향은 해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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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당시 창원 읍내에서 매달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던 5일장은 규모가 커서 장날마다 주변 농촌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은 3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각 지방의 독립 만세시위로 이어졌다. 경상남도 지역의 애국인사들은 비밀리에 3월 23일(음력 2월 2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반의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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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세곡 보관 창고. 조선 건국 이후 전국에 있는 해운 교통의 요지에는 세곡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조창(漕倉)이 설치되었다. 조창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금 보관 창고이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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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신 또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이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창원시는 2010년 7월 1일자로 구 마산시 및 진해시와 행정 구역을 통합하여 통합 창원시로 공식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창원시의 인구는 통합 전 60여만 명에서 통합 후 약 110여만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통합의 내용이란 단순히 행정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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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 출신의 목사·독립운동가. 주기철(朱基徹)[1897~1944]은 3·1 운동 이후인 1920년부터 ‘종교’와 ‘목회’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경남노회의 추천을 받아 1922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한 주기철은 신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경상남도 양산읍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 훈련을 받았지만 민족주의 계몽의식을 포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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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청주 산업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알려면 1924년 경상남도에서 발행한 마산의 공장 통계에서 보면 된다. 주조 공장이 6개, 장유 양조장 1개, 정미소 2개, 제면소 1개, 철공소 2개 등으로 나타나 있다. 개항 이후 제법 규모 있는 공장을 분류하였을 때 청주 주조장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조계지를 설정한 구역 내에 제일 먼저 조계지 끝 지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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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 전해 내려오는 저고리 섶에 담긴 사랑 이야기. 「주인 잃은 저고리」는 2008년 진해시에서 발행한 『진해 스토리』에 수록되어 있다. 원작의 저자는 조재영이다.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는 장영도[1874]의 장녀 장남옥[1907~1932]과 한 동네 김영순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한 편이 전해온다. 김영순은 경성 법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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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151-5에 위치한 아구찜 전문 식당. 1965년 아구찜을 개발하여 판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5년 창업자 박영자의 뒤를 이어 아들인 이현점이 식당을 운영 중이며, 손녀 이규영이 3대를 잇기 위해 식당 일을 배우고 있다. 1960년대 처음 선보였던 방식 그대로 말린 아귀로 찜을 해 동치미국만 곁들여 판매하고 있다. 진짜 초가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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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진해 지부의 산하 단체로 한국 무용 협회의 진해 지부. 주로 군항제 예술 행사에서 경축 음악회 공연을 해오다가, 무용 발표회와 합동 무용 예술제, 초청 무용 공연 등을 개최하는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무용 공연을 해오고 있다. 열악했던 진해 무용의 저변 확대는 물론, 군항제의 예술 행사를 위해서도 무용협회가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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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 농민들이 토지 수탈과 소작권에 대해 일으킨 저항 운동.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은 러일 전쟁 이후 1906년과 1907년에 일본의 해군 용지로 점탈되었다. 하지만 모든 토지가 군사 시설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일본 해군성은 그 남은 땅을 경작하도록 대여를 하였는데 일본인에게만 특혜를 주었다. 토지를 대여하게 된 일본인들은 농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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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1923년 소작료를 인하하고 관리자 횡포를 막기 위해 결성된 소작회. 지주가 소작권을 가질 수 없게 하고 고율의 소작료로 착취할 수 없게 대항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23년 6월 18일 주병화(朱炳和), 문찬두(文酇斗), 김종건(金種健) 등이 발기인이 되어 불교 포교당[정암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다시 조직을 변경하여 종래 소작인만으로 조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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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에 있는 봉수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성산구의 경계부에 솟아 있는 장복산(長福山)의 고봉에 위치한다. 경상도 방면에서 서울의 목멱산(木覓山)에 이르는 제 2거의 간봉(間烽)이다. 『동국여지지』와 『여지도서』에 따르면 장복산 봉수는 장복산에 있었다. 명동 마을의 배후에 위치한 사화랑 봉수(沙火郎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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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설립되었던 화학 비료 공장. 진해 화학이 설립될 당시 1960년대 우리나라는 농업이 주력 산업이었으나 국내에서 사용하는 비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식량의 자급 자족을 위한 비료 수급과 정부의 중화학 공업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대단위 비료 공장이었다. 진해 화학은 정부의 공업화 정책에 따라 제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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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다양한 종교. 종교(宗敎)란 ‘신(神)이나 초인간적·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인간들의 경외와 숭배, 신앙하는 일의 총체적인 체계’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류 문명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전근대 시기 진해구의 종교 현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지만 이곳은 불교·천주교·기독교나 혹은 신흥 종교인 천리교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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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서 주로 정치 군사적인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운용된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지방과 변경의 긴급한 상황을 국왕에게 신속히 전달하기 위하여 마련한 통신 제도이며, 주로 정치 군사적인 목적에서 설치, 운영되었다. 기록상 봉수제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인데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봉수로는 고산 봉수(高山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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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구전 민요. 「내서의 구전 민요(프린트본)」[백종기, 2007]에 수록되어 있으며, 가창자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정채남[여, 1940년생]이다. 1 아니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창문을 닫쳐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사랑이 달빛인가 달빛이 사랑인가 텅빈 내가슴속에 사랑만 가득히 쌓였구나 사랑사랑 사랑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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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에 있는 종교 방송국. 창원 극동 방송은 경상남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개신교 복음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사시를 크리스천들의 신앙 성숙과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정하고 있다. 창원 극동 방송은 1995년 12월 21일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1996년 3월 16일 재단 법인 형태로 개국하였다. 2000년 9월 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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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1408년(태종 8) 7월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었다가, 7년 후인 1415년(태종 15) 창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태종실록(太宗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원도호부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김해까지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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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 마산 석전동 봉화산 봉수대는 회원동과 석전동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 성내에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상황을 수도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쌓았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지도에서는 ‘성황당 봉수대’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창원 지역의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봉화산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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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경상도 방면에서 서울 목멱산[남산]에 이르는 조선 시대 봉수 체제에서 제 2거의 간봉(間烽)으로 동쪽의 가덕도 천성 연대 봉수(天城烟臺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서쪽 창원 여음포 봉수(餘音浦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로 연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894년(고종 31) 팔로(八路)의 봉수가 폐지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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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일원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향토 특산물 축제. 창원 지역에서는 낙동강 둔치 일대에서 수백 년 전부터 하절기에 수박을 재배해 오다가, 1980년대 초반 이후 비닐하우스 시설을 이용한 반 촉성 재배를 시작하였다. 그 후 해마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4.96㎢의 면적에 약 1,000여 농가가 재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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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아동에게 종합적인 아동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 지역 사회 아동의 보호, 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 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 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지역 아동 센터는 1980년대 중반 빈곤 지역과 농산어촌 중심의 공부방 활동으로 시작되었으며 2004년 「아동 복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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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에 있는 환경 시설 사업소의 최종 침전지 옥상에 조성한 태양광 발전 시설. 1957년 설립된 향토 기업 한국 철강은 2003년 11월 당시 마산시 월영동 ‘마산공장’을 36년 만에 가동을 중단하고 공장 부지로 사용하던 터를 주택 건설업체 부영에 매각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한국 철강은 신마산 지역 주민의 화합과 체력 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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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마을은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모산수박을 홍보하기 위해 1987년에서 1991년도까지 모산수박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남모산마을 출신인 박진덕 씨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산수박축제는 하나의 자연마을이 주관한 축제인데도 노래자랑대회, 수박품평회, 수박아가씨선발대회 등의 다채로운 행사로 지역민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한 뒷면에는 모산마을 사람들의 땀 흘린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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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는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고 또한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유학자로서 최초의 인물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월영대와 관련된 설화로 회자되고 있으나 징험할 자료가 없다. 그 이후 고려시대에도 창원 지역을 거쳐 간 많은 인물들이 있으나 이들이 창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창원 지역에 유학이 제대로 진작된 것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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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정동에 있는 경전선 기차역. 경전선은 경부선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과 호남선의 광주광역시 송정리를 잇는 철도로 총 길이는 300.6㎞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첫 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 하였다. 창원역은 1970년대 말까지는 한적한 시골역에 지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창원 공업 단지의 완성과 경상남도청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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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창원읍 항일의거는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같은 해 3월 23일과 4월 2일 창원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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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에 있는 한국 천리교 교단. 한국 천리교는 대한 천리교 내부의 교의적 차이가 발생하자 부산 및 경남 교구의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선교를 모색하고자 창설되었다. 1986년 6월 15일 진해구 여좌동의 대한 천리교 경남 교구가 폐쇄되자 부산 및 경남 교구의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1986년 6월 18일에 ‘한국 천리교 연합회’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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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에 있는 한국 천리교 경남교구 소속의 교회당. 동광 교회는 천리교의 천리왕명(天理王命)을 받들고 죄악의 근원인 욕심을 제거하여 서로 사랑하며 신에게 노력을 바치는 것을 교지로 삼아 참다운 이상 세계인 ‘감로대(甘露臺)’를 건설할 것을 목표로 배대봉이 개설하였다. 1941년 배대봉이 처음으로 입교를 하였고, 1955년 2월에 진해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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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안민마을에서 6월 첫째 일요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창원시 천선동은 불모산 자락에 있는 신라 고찰 성주사가 건립되기 전부터 형성된 오랜 연원을 가진 마을로서 당목과 당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천선동 안민 동제는 수문당제라고도 하며, 정초에 당산할매를 모시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일제의 감시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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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합 창원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종교. 현재 마산 교구가 관할하고 있는 경상남도 일원에 교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1827년 2월[음력] 정해년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보고 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피난 교우들이 한편으로 백운산, 덕유산 자락을 따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낙동강을 따라 경상남도 전역으로 내려와 따뜻하고 일거리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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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철기를 연모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철기 시대는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소위 삼시기 구분법에서의 마지막 문화 단계이다. 한국의 철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300년 중국 전국 시대 연나라 등으로부터 철 문화가 들어온 시기부터 기원 전후까지로 보고 있다. 철기 문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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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침목 위에 철제의 궤도를 설치하고 차량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하는 시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비롯되었다. 경부선 철도가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고, 1905년 1월 1일 개통되면서 종단 철로의 기본축이 형성되었다. 곧이어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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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동락(崔東洛)[1892~1963]은 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마산(馬山)에서 기독교 인사들과 창신(昌信)·의신(義信) 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의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마산으로 내려온 이갑성(李甲成)은 창신 학교 교사 임학찬을 만나 서울의 만세 운동 상황을 전하고 의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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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범술(崔凡述)[1904~1979]은 1916년 경상남도 다솔사(多率寺)로 출가하였다. 1919년 3월 해인사(海印寺) 지방 학림(地方學林)에 재학 중이던 최범술은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에 유학 중이던 최원형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 받고 동지들과 함께 만여 매를 인쇄하여 합천, 의령, 진주, 사천 등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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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세권(崔世權)[1901~1939]은 1919년 4월 11일 창원군 천가면 가덕도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1919년 3월 말 경 서울에 다녀 온 양흥석(梁興錫)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고 김동원(金東洹), 이상운(李相云), 조용진(趙鏞晉) 등과 뜻을 모아 천가면에서 4월 11일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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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창원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산업 관련 전시회. 해마다 컨벤션 센터가 있는 각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최되는 행사로 지역 컨벤션 인프라 홍보를 통한 지역 균형 발전 및 컨벤션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개최하고 있다. 개최 기간 컨벤션 마트[전시회], 해외 바이어 조찬 설명회, 셀러-바이어 워크숍, 한국 컨벤션 협의회 대표자 간담회, 개막식, 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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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주)통일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사건.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을 앞두고 노태우 정권과 자본은 조직력이 강한 지역과 노동조합에 대한 집중적인 탄압을 시도했는데,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과 통일노조도 그 대상이었다. 당시 마산·창원 지역에는 치안본부 국장급 수명을 포함한 30명 규모의 특별수사대가 파견되었을 정도였다. (주)통일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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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있는 하이트 진로(주) 맥주 생산 공장. 조선 맥주(주)는 1977년 한독맥주(주) 마산 공장을 인수하였다. 조선 맥주(주)는 300만 상자를 마산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조선 맥주(주) 마산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부산, 경남, 경북, 전남 지역에 맥주를 공급하여 운반비 등 비용 부문을 크게 절감하기 위하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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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있는 한국 건강 관리 협회 소속 지부. 1950년 대~1960년 대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감염률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한국 건강 관리 협회는 기생충을 박멸·퇴치하기 위해 「기생충 질환 예방법」에 의하여 1964년 한국 기생충 박멸 협회로 창립되었다. 본부는 서울에 설치하고 각 시도 단위별로 지부를 설치하여 기생충 구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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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한국 무용 협회 산하 마산 지부. 마산 무용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마산 지역 무용 발전을 통해 마산 문화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목적이 있다. 1962년 7월 7일에 한국 무용 협회 마산 지부가 김해랑, 이경희, 강문자, 김선덕, 손두애, 이열, 이영석, 이필이 8명을 회원으로 설립되어 초대 지부장에 김해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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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자유 무역 지역 내에 있는 종합 전자 부품 제조업체. 한국 성전 주식회사는 1972년 12월 20일에 외국인 투자 인가를 받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일본 호시덴(HOSIDEN)이 100% 소유하고 있으며, 전자 부품 제조 및 판매를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 성전 주식회사는 1973년 2월 1일 마산 자유 무역 지역 내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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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양덕동에 있는 한국 소비 생활 연구원 서울 본부 소속 지사. 비영리 민간소비자 단체인 (사)한국 소비 생활 연구원은 1994년에 개원하여 1999년에 재정 경제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급속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과학적인 소비자 계발에 역점을 두며 현장 체험에 바탕을 둔 소비자 문제 및 건전한 소비 실천 확산에 중점을 둔 전문 연구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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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에 있는 신장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단체. 1979년 전국 신장병 환우들의 모임이 최초로 만들어졌고 1980년 한국 신장 협회를 설립하였다. 1992년 한국 신장 재단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2000년 신장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게 돼 2001년 한국 장애인 단체 총연맹에 가입했다. 현재 한국 신장 장애인 협회는 서울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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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총의 산하 단체로서 마산 지역 장르별 예술인들로 구성된 협회가 모여 연합회 형식으로 구성된 단체. 마산 지역 예술인들의 화합과 창착 기반을 조성하고 활동 역량을 키우면서 시민들의 문화 예술의 정서을 함양하는 등 마산다운 문화 예술의 바탕을 일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3·15 의거와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공백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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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출신의 문학인. 경상남도 창원시는 권환(權煥)[1903~1954]의 고향이다. 1924년 문단에 나온 뒤 30여 년 동안 계급 문학의 중심에서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을 실천했던 문학인이다. 그는 시·소설·아동 문학·평론·희곡에 걸쳐 다채로운 문학 활동을 펼쳤으며, 시집 『카프 시인집』[공동 시집]·『자화상』·『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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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봉암동에 있는 정부가 관리하는 비관세 임해 공업 단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출 진흥, 고용 증대, 기술 향상을 기하여 국가 및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0년 1월 특별법인 「수출 자유 지역 설치법」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외국인 전용 공단이다. 마산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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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서 남송의 어화인(魚化仁)을 시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종 어씨(咸從魚氏)의 본관은 평안남도 증산군(甑山郡)이다. 본관지인 함종(咸從)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오랫동안 황폐하였다. 고려 때 아선성(牙善城)을 설치하였고, 1018년(현종 9)에 함종현으로 개편하였으며, 고려 후기에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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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은 고대로부터 창원·김해 지역과 해외를 연결하는 접촉 통로 역할을 하였다. 가락국 허황후가 탔던 배가 진해구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처음으로 침략해왔던 지역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진해구 해안에 수군 관방과 왜관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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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수도는 도시 정책 전반에 걸쳐 환경적 고려를 우선시하는 도시들 중 한 국가의 대표적 프로그램과 위상을 지닌 친환경 도시를 지칭한다. 환경수도는 ‘환경적으로 건전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미래 세대의 환경을 배려한 도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도시’로서 그 나라에서 환경에 관해서는 가장 선진적이며 모범적인 도시이다. 또한 도시의 하드웨어 등 물리적 구성 요소 뿐만 아니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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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를 거쳐 서울과 진주를 연결하는 고속 철도.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철도 용량 포화가 예측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1980년대 말부터 정부 차원에서 고속 철도(高速鐵道)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와 더불어 경상권 철도 교통의 활성화를 위해 삼랑진에서 진주 사이의 복선 전철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2010년 11월 1일 경부 고속 철도...